지명관 선생님의 부고를 접하며

[언론 다시보기]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2022년 새해는 일본에서 맞이했다. 1월1일 아침에 가족들과 함께 신사에 가서 모두의 건강을 빌었는데, 그날 지명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하고 낙담했다. 어쩌면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알려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1973년~88년, 일본 잡지 ‘세카이(世界)’에 ‘T.K생’이라는 필명으로 칼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하며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2003년에 지명관 선생님이 ‘T.K생’이 자신이었음을 밝히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부모님이 젊은 시절에 읽었다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의 저자 지명관 선생님의 책을 찾아 읽곤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연대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부고를 보고 낙담한 건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사히신문을 퇴사한 선배가 지명관 선생님의 책을 내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선배는 구마모토 신이치 기자다. 구마모토 기자가 2019년에 지명관 선생님을 인터뷰하러 한국에 왔을 때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앞으로 여러 번 한국에 와서 인터뷰하고 책을 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영향으로 한국에 올 수 없게 되고 계획이 멈춘 사이에 구마모토 기자가 암으로 입원했다. 인터뷰가 어려워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명관 선생님의 부고를 보고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사히신문의 지명관 선생님 부고 기사는 구마모토 기자가 썼다. 퇴사한 기자가 쓰는 일은 드물지만, 그만큼 가까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구마모토 기자는 암 투병 중이며 원고를 쓰는 건 상당히 힘든 상태였다. 그래도 2019년에 지명관 선생님이 한 말을 책 대신 부고 기사를 통해 전했다. “정부가 뭐라고 해도 우리 국민은 이렇게 교류하겠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앞으로 아시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속 좁은 국가 권력에 시민의 양식(良識)이 이겨야 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지명관 선생님의 자서전 ‘경계를 넘는 여행자’를 읽었다. 일본에서 20년 이상 망명생활을 지내고 나서 “일본에 긴 세월 머물렀던 경험 때문에 세계와의 연대 없는 한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고 쓴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 아시아 국가들이 점점 폐쇄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금 상황이 안타깝다.


나는 지명관 선생님과 반대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신문에 일본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다. 중앙선데이의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라는 연재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는 매달 일본에 다녀와서 생생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는데 일본에 자주 못 가게 되면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작년 11월에 9개월 만에 일본에 가서 쓴 칼럼에는 현지에서 보고들은 것들을 그대로 썼다. 드라마나 음식 등 한국 문화가 넘쳐나는 일본에 대해 썼더니 생각보다 반응이 컸다. 그런 상황이 한국에 잘 전달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본 배우들이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한국 드라마를 패러디한 참이슬 광고가 화제라고 쓴 것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일본어와 섞어서 일본 물건 소개하면 계란 맞겠지”라는 댓글이 달렸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었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독자가 있어서 반가웠다.


지명관 선생님처럼 큰 일은 못하지만, 선배가 어렵게 쓴 부고 기사를 읽고 적어도 뜻은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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