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편집국을 두자

[언론 다시보기] 오동재 기후변화청년모임 BigWave 운영위원

오동재 기후변화청년모임 BigWave 운영위원

언론의 취재 부서와 인력은 이슈의 중요도 변화에 맞춰 바뀐다. 누가 변화를 먼저 포착해 이슈를 선점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지가 결국 언론사의 경쟁력을 좌우하기도 한다.


몇 년 새 기후변화가 주요 현안으로 부상했다. 단순히 과학과 날씨의 문제였던 기후변화는 이제 산업과 정치·안보, 심지어 종교와 문화의 문제로도 확장되고 있다. 자연히 기후변화는 환경 출입처에서만 다룰 수 없는 이슈가 됐다.


여러 변화들이 시도됐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부터 기후팀을 신설해 80여명의 취재인력을 보유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별도 기후 섹션을 개설해 관련 의제를 심도있게 다뤄왔다. 영국 가디언지는 아예 기후보도 논조와 원칙들을 설정하고, 매년 경과 보고까지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한겨레신문을 시작으로 MBC, 한국일보 등에서 기후 전담 부서를 만들었다. KBS는 기존 ‘재난방송센터’를 확대해 전담 부서를 만들었다. 환경 전문 기자가 기존 부서 내에서 기후 문제를 다루는 언론사도 있다.
울프강 블로 영국 옥스포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방문연구원이 지난 9월 세계신문협회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언론의 편집국 개편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기존의 환경·과학 전담 부서의 규모를 키우거나, 아예 기후만 전담하는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별도 조직 확장·신설 없이 기존 데스크 간의 원활한 소통을 장려하는 방법 등이다.


세 모델 모두 장단점이 명확하다. 기존 과학 부서의 확대는 과학적인 정합도가 높은 기사엔 도움 되지만, 과학 외 전반적인 이슈는 취약하다. 전담 조직 신설은 홍보 효과는 물론 다양한 분야의 기후 보도가 가능하지만, 기존 취재 부서와의 갈등이 우려된다. 데스크 간의 원활한 소통은 잘만 된다면 뉴스에 기후 의제를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지만, 뉴스룸 내 고도의 협력적인 문화가 전제돼야만 한다.


그래서 어떤 모델이 가장 좋을지는 판단이 어렵지만, 세 모델 모두 공유하는 취약점이 있다. 이들의 성공 여부가 편집국의 리더십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다. 즉 편집국에서 기후위기를 범사회적인 이슈가 아닌 하나의 하부 주제 정도로 생각한다면, 아무리 일선 기자들이 노력해도 그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울프강 블로는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4번째 모델로, 편집국 내 ‘임시 기후 의제 편집장’을 둘 것을 제안한다. 이 편집장은 사내 모든 편집회의에 참여해서 관련 아이템의 기후 관련 시각을 더하고, 다른 팀과의 협업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제안이 국내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앞선 고충들은 국내 기후변화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들려온다. 누군가는 편집회의에서 고배를 마시고, 누군가는 기후팀에선 쓰지 않았을 기사를 산업과 정치부에서 쓰기도 한다. 신설된 기후팀이 금방 다른 팀에 다시 흡수되는 사례도 있었다.


기후변화는 언론이 마주했던 여느 이슈들과는 다르다. 탄소 문명의 조속한 종말을 요하는 시대적 화두에 대한 모든 분야의 고민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탄소 집약적 문명의 정점인 한국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는 편집국의 의지 없이 일선 기자의 노력만으론 해나갈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니 기후변화 보도에서 경쟁력을 갖고자 하는 언론사가 있다면, 먼저 ‘기후 편집국’을 만들 것을 제안드린다. 그래서 모든 보도에서 ‘기후’가 고려되고, 우선시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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