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이 주택 사회화하는 동안 한국은 뭐했대?

[언론 다시보기]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지난가을, 베를린에서는 주택 사회화에 대한 시민 투표가 열렸다. 거대 부동산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주택을 장기적으로 베를린시가 사회주택으로 다시 사회화시키는 것에 대한 투표였다. 이 투표를 통해, 베를린의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아주 강력한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됐다. 시민들은 집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는데, 정치와 제도는 그 흐름에 어떻게 발맞춰갈 것인가? 베를린 정치는 집을 시민의 품으로 되돌리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대한 답을 더 이상 유예하기 어렵게 됐다.


베를린의 주택 집값 및 임대료 상승 문제는 타 대도시들과 다를 바 없다. 시민들은 이 문제의 해법을 주택 사회화에서 찾는다. 한국과는 해법이 사뭇 다른데, 세입자 권리와 집값 규제에 대한 사회적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계약갱신청구권이 무기한으로 보장되는 도시다. 임대료는 임대인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임대인, 임차인 각 입장을 대표하는 협회가 있고, 이들과 공공이 함께 해당 한 해의 표준임대료 수준을 합의한다. 지나친 임대료 인상 요구는 할 수 없으며, 이는 신규 임대차계약에 대한 것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세입자의 권리를 함께 이야기하는 세입자협회 등이 있어 권리 침해 앞에 대항할 힘도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계약갱신청구권은 고작 1회만을 보장할 뿐이다. 임대료상한율은 5% 이내로 합의하라는 법 조항은 무시되고 임대인의 일방적 통보로 이루어지는 일도 빈번하다. 신규 임대차계약시 임대료 책정은 임대인의 고유 권한이며 세입자에겐 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모든 세입자의 주거불안에 대한 해답을 ‘내 집 마련’으로 풀고 있는 게 한국 사회다. 당장의 설움을 딛고 주거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내 집 마련의 경지에 도달하면 이러한 권리 침해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답안만을 제시한다. 세입자로 살면 평생 주거불안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회, 임대인과 임대법인들이 집을 독과점하고 집값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사회는 정녕 지속가능하거나 불평등이 완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그럴 리 없다.


그 많은 주택을 과점하고 있는 부동산 기업을 중심으로 조성되고 있는 집을 다시 사회의 것으로 되돌리고, 집의 투기화, 불로소득화를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베를린 시민들은 베를린세입자협회를 중심으로 서로의 주거권을 지키기 위한 고민을 함께 나눴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집단이 필요하다. 집값이 끝을 모르고 치솟는 현상 앞에 어서 빨리 영끌해서 자가소유 계층에 속하라는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인 사회는 구조적 불평등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개인들의 집단이 필요하다. 이로써 세입자의 언어를 획득할 집단이 필요하다.


베를린은 주택 사회화를 논의하는 동안 한국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를 한탄하고 싶지 않다. 당장 대도시 서울부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세입자로 살아가는 서울시민 또한 도시의 주인이고, 한국 사회의 주인이다. 당장 몸 두고 있는 집이 자신의 소유가 아닐지언정 그 집에 살며 그 도시의 공동체를 함께 이루고 있는 시민이다. 그것만으로도 주거권을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하다. 고작 더 많은 집을 소유하고 더 높은 집값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우리의 살 권리가 침해될 순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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