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학대 피해 아동이 성장해 가정 밖에 놓이게 된 경우가 정말 많아요. 아동학대라고 하면 사회적으로도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가지잖아요. 그런데 성장한 피해 아동이 가출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더라고요.”
보호 관찰 처분이 끝나가지만 자신을 챙겨준 보호 관찰관 없이 다시 혼자가 된다며 슬퍼하고, 집에서 기본적인 양치 교육조차 받지 못해 70세 치아를 가지고 있던, 노래방 도우미라는 불법적인 일을 하던 아이들. 김정남 대전CBS 기자는 지난 2014년부터 매년 <방임 청소년 보고서>, <어린 채무자들> 등의 기획물로 가정 밖 청소년(가출 청소년)의 이야기를 보도하고 있다. 김 기자가 그동안 만난 수많은 가정 밖 청소년들은 범죄, 일탈을 일삼는 문제아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아이들 대부분이 스스로 일탈이나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집 밖에 나온 게 아닌 것을, 이들이 현재의 모습이 된 이면에 가정 폭력과 학대 문제가 적지 않음을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보고 학교 밖 청소년 상황에 관심을 가졌지만,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받는 건 아니었다. 기사가 나갈 때마다 “왜 범죄자를 두둔하냐”는 비난 댓글이 달리고, 메일이 왔다. 가정 밖 청소년을 향한 비난은 한남대 범죄학 석사과정 중이었던 김 기자가 석사 졸업 논문의 주제를 가정 밖 청소년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한 계기가 됐다. “인식이라는 걸 바꾸는 게 정말 쉽지 않구나 싶었어요. ‘나쁜 애들 편드는 기사다’ ‘일부의 이야기인 거 아니냐’ 비난이 따라왔죠. 정말 몇몇 이야기인 걸까, 이 문제를 객관적인 수치의 자료로 알려줄 방법이 없을까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김 기자는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다고 느낀다. 대전·충남지역 가정 밖 청소년 160명의 설문조사로 이뤄진 논문은 설문지를 짜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설문 문항 하나하나 쓰는 방식이 있고, 신뢰도를 위해 질문 하나를 가져오는 것도 선행 연구를 참고해야 했지만,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기존 연구는 많지 않았다. 출산과 육아휴직까지 겹쳤고, 복직 이후엔 저녁마다 아이는 가족에 맡겨두고 논문 작업을 했던 나날이었다.
비 시설 가정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위해 아지트를 수소문해 밤마다 공원에 모여있는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며 다가갔던 경험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아이들 대부분이 설문조사 질문 하나하나에 고민하고, 성실히 답했다는 것이었다. 김 기자는 그 모습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집을 떠나서 이동한 경로’처럼 주관식 질문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써야 하고, 설문 자체도 성가신 일인데 진지하게 임하더라고요. 제가 누군지 알고,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아이들이 설문을 하며 자기 얘기를 하기도 했죠. 이 아이들의 상황과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됐어요.”
지난해 2월 김 기자가 발표한 논문은 가정 밖 청소년들이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낮을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오히려 이들이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스스로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오히려 가정 밖 청소년의 비행행위가 가정 밖 환경에서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는 아닌지 논의를 남겼다. 김 기자의 이같은 논문 내용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된 한국경찰학회 학술지에 지난 2월 실리게 됐다. 졸업 논문 이후 분석한 <가정 밖 청소년의 학대 피해와 범죄 가해·피해의 중첩현상에 관한 연구>도 지난해 12월 KCI에 등재된 대한범죄학회 학술지에 발표됐다. “가정 학대 문제의 관점에서 가해·피해 문제를 바라봤다는 면에서 좋은 평가를 주셨어요.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가정 밖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구인 게 맞다는 걸 확인받은 거 같아 무엇보다 안도가 됐죠.”
여전히 가정 밖 청소년 문제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김 기자의 꾸준한 보도로 지역 사회에서는 이제 논의가 시작된 상황이다. “흔히 아동, 노인은 표가 된다고 말하죠. 청소년, 특히 가정 밖 청소년 문제는 정책적으로 제일 후순위로 밀려나 있어요. 기사를 써도 잘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기사를 쓰는 거예요. 꾸준히 이 문제를 알려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