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오송이씨는 요즘 뉴스를 보면서 피로감을 느낀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면 단편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깊이 없는 뉴스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오씨는 “특히 정치 기사는 정도가 심하다. 어떤 국회의원이 단식했고 삭발했다는 이벤트성 보도나 정치인이 어떤 발언을 했다는 식의 단순보도가 쏟아져 나온다”며 “기사가 더 이상 정보취득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안 그래도 정보 과잉 시대인데 언론도 한몫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독자들은 언론이 왜 변화하지 않는지 묻고 있다. ‘조국사태’를 계기로 언론개혁 요구가 나온 배경 그 한가운데에는 저널리즘 품질하락이 자리 잡고 있다. 검찰발 기사 문제뿐만이 아니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받아쓰기, 베껴쓰기는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보도 관행이다. 결국 계속해서 이어진 기사 품질하락은 한국 언론 불신의 단초가 됐다.
독자의 시각에서 품질 낮은 기사는 무엇일까? 직장인 김지혜씨는 최근 네이버 뉴스의 ‘많이 본 기사-사회 부문’ 순위 대다수가 ‘에어프라이어 감자튀김’ 기사처럼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로 채워진 점을 예로 들었다. 김씨는 “에어프라이어에 감자를 너무 오래 튀기면 안 된다는 기사였다. 기사를 쓴 언론사는 다 달랐지만, 내용과 제목까지 똑같았다”며 “에어프라이어 감자튀김 기사가 모든 언론사가 쓸 정도의 소재인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원인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건강, 환경, 기술 등 과학 기사에는 무엇보다 확실한 팩트가 중요하지만, 그 원칙이 자꾸 무너진다. 건강과 관련해 사람의 몸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지만, 획일적이고 단순화해 보도한다”며 “기자들이 공부도 안 하고 사실 검증도 안 한 채 정보를 덥석덥석 받아먹는 것이다. 특히 지난 라돈 침대 파동 때는 국민의 공포심만 자극하고 과학적 팩트를 무시한 보도가 많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대학생인 김서영씨는 “여성 연예인들의 사망을 다룰 때 해당 연예인의 화제성을 끌고 와 보도하는 모습을 봤다. 메이저 언론이라고 불리는 곳도 마찬가지였다”며 “사건·사고 기사도 단순보도만 있을 뿐 분석이 부족하고 사회 갈등만 야기해 아쉬움이 크다”고 비판했다.
2019년은 어느 때보다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이 거센 한해였다.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가수 겸 배우 최진리씨와 가수 구하라씨는 받아쓰기 보도 관행의 희생양이었다. 연예인 본인의 자기 의사 표현과 SNS 사진을 그대로 실어 ‘논란’으로 포장해 보도하는 ‘논란 장사 보도’와 개인에게 가해지는 악플을 언론이 그대로 기사로 전해 또 다른 악플을 조장한 ‘악플 중계식 보도’가 또 다른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다.
사건·사고 기사의 선정적 보도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고유정 사건’의 경우 언론은 범행을 상세히 묘사해 모방범죄의 위험성을 키우고,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피의자 주변인 보도 등을 쏟아냈다. 또 사건 보도가 온라인에 집중돼 언론이 고유정 사건을 트래픽 올리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뉴스가 BBC, NBC, NHK 등 해외 방송사 뉴스보다 ‘심층적 뉴스’가 부족하고 보도자료 의존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난해 9월 ‘퀄리티 저널리즘을 위한 탐색: 한국 TV뉴스의 품질’ 컨퍼런스에서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는 2018년 한해 동안 보도된 리포트 중 지상파는 37.1%, 종편은 34.6%가 심층성이 있다고 평가한 반면, NBC는 65.7%, BBC는 48.0%, NHK는 57.4%가 심층성 있다고 봤다. 또 지상파는 전체 뉴스의 49%, 종편은 40%가 보도자료를 출처로 삼았고 NBC와 NHK는 보도자료에 의존한 전체 뉴스 비중이 각각 4.4%, 5.7%인 것으로 나타났다.
포털 중심의 뉴스 소비 구조에서 언론사들의 ‘트래픽 지상주의’ 디지털 대응 정책은 기자들의 업무 과중과 기사의 품질하락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사 경영진들의 디지털 접근은 속보 대응, 조회수에만 국한됐다는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전국언론노조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편집국 소속 기자 중 49.8%는 지난 3년 동안 일주일 기준 기사 출고량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기자 중 49.1%는 ‘기획·해설기사 감소’를 현재 취재·보도 관행의 문제로 지적했고 그 원인으로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 증가’(42.4%) ‘지면을 메우기 힘든 현실’(26.5%), ‘디지털 속보 전쟁’(25.0%) 등을 꼽았다.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미디어와 기술 환경 변화로 이제 기자들은 숙고해 기사를 쓸 수 없는 현실에 내몰렸다. 기자들은 실시간으로 기사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간단한 팩트 확인만 하고 기사를 내보내는 상황”이라며 “주52시간 근무제 영향도 있다. 이전보다 기자들의 취재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10시간 취재한 것과 2~3시간 취재한 결과물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복합적인 구조에서 기자들이 좋은 뉴스를 제공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시민 대부분이 포털을 통해서만 뉴스를 소비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어뷰징 기사, 속보성 기사는 언론사에게 당장의 수익과 연결된다. 때문에 언론사들은 어떤 게 문제인지 알면서도 기사 품질을 향상시킬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권지담 한겨레 기자의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기사는 의미가 크다. 사건팀인 24시팀에 있는 권 기자가 한달간 요양병원 체험이 가능했던 건 “돌아가면서 기획에 투입되는 게 이상하지 않은” 한겨레만의 문화 때문이다. 요양병원에 취업 하기 위해서 권 기자는 요양보호사 국가시험을 치러야 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학원에 다닌 두달, 시험 합격 후 한달간의 구직 기간 동안에도 데스크는 권 기자를 최대한 기자 업무에 제외해 기획 준비에 집중할 수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만약 국가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사실상 기획이 내년까지 미뤄질 수 있고 요양병원 취직을 못 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데스크는 권 기자를 믿고, 기다려줬다.
권 기자는 “타사 사건 기자들이 ‘정말 기획을 하면 라인에서 빠지게 하는게 맞냐’고 많이 물어본다. 사건팀은 한사람이 일당백을 해야 한다. 그만큼 팀원들의 공감과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팀원들은 한 기자가 기획을 맡을 동안 라인을 커버해준다. 한겨레에서는 그게 전혀 새롭거나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러한 팀 분위기 속에서 24시팀 기자들은 지난해 <대한민국 요양보고서>외에도 <텔레그램에서 퍼지는 성착취> 등 다른 언론사가 발굴해내지 못한 기획을 선보일 수 있었다. 권 기자는 “이런 기획이 가능했던 건 한겨레 24시팀만의 정체성과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식의 저널리즘 품질 향상을 위한 시도도 있다. 한국일보가 매주 목요일마다 연재하고 있는 View&(뷰엔)은 이미지 위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콘텐츠다. 뷰엔 구성원은 주제 선정에 제한을 두지 않고 ‘보여줄 만한’ 아이템을 발굴한다.
박서강 한국일보 디지털미디어부장은 “독자들은 이제 읽는 것보다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며 “판매직 노동자들 발을 모아 보여준 콘텐츠가 특히 반응이 좋았다. 판매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이미 다른 곳에서 많이 나왔던 내용이다. 겉은 번지르르하고 깨끗한 유니폼을 입은 판매직 노동자들의 발은 문드러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이 더 공감하고 사안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