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짜를 알고 있을까. 이 질문에서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어사그)가 시작됐습니다. 몇 달씩 게이트를 쫓고, 권력자에게 거친 질문을 던지고, 한 줄의 팩트 확인에도 수많은 시간을 쏟는 법조 기자들이 미처 묻지 못한 질문 말입니다. 사건수로 전체의 1%도 안 되는 게이트 연루 인사들 말고 주변 시민들은 어떻게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을까.
질문은 이렇게 확인됐습니다. 사건수에 비해 판사수가 턱 없이 적어 민사·행정 사건의 70%를 ‘덤핑 재판’하는 실태, 법정구속까지 시켰지만 정작 판결문엔 혐의 중 무죄 부분 이유만 잔뜩이고 유죄 이유 설명은 없는 선고, 당선무효형 선고 재량을 오직 형사사건 재판부의 양심에만 맡겨 ‘재판 거래’의 빌미를 남겨둔 선거재판 양형 제도….
이런 문제들을 처음 알았을 때 부끄러웠습니다. 법조기자입네 했지만 실은 아무 것도 몰랐구나. 그 다음엔 스스로의 취재를 검열했습니다. 평소 언론이 주목한 수사·재판에선 그나마 지켜지던 근대적인 사법 절차가, 카메라 밖 99% 사건에선 묵살되는 걸 보며 취재에 오류가 없었는지 몇 번을 되물었습니다. 가끔 시원했습니다. 막연하게 이상하다 생각했던 예전 사법 처리가 떠올랐고, 그 이면의 사정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리고 연민. 특유의 성실함과 영리함으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이미 황폐해진 하급심 재판 체제의 덫에 걸린 법조인들이 재판 당사자의 승복과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길은 멀어 보여 답답했습니다.
복잡한 감정들 때문에 11회까지 연재할 동안 100% 후련한 출고는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판사를 늘리고, 판결문 공개로 판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시키고, 무죄추정 대신 유죄확증 원칙을 따르던 사법 관행을 폐지하자는 제언이 전달될 지 조바심도 났습니다. 언젠가부터 ‘진정한 변화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뤄지거나 잘난 척으로 치부됐으니까요. 수상으로 힘을 얻습니다. 연재를 이어갈 어사그를 통해 지금의 문제, 그 문제의 근본 원인, 사회가 건강해질 대안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