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부를 때는 국가의 아들, 아플 때는 당신의 아들입니까?” 사단 의무대와 군 병원을 떠돌다 숨진 고 홍정기 일병. 2년이 지났지만,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게 해 달라.” 어머니의 바람은 간단했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루기 위해 SBS ‘끝까지 판다’ 팀이 집중한 것은 ‘군내 무면허 진료’였다. 홍 일병이 세상을 떠난 것은 결국 군내 전문 의료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단 의무대에서 혈액 검사만이라도 제대할 수 있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라를 지키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법이 규정한 최소한의 의료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조차 의심하게 하는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다. ‘보안’을 최우선시하는 군의 특성 때문이었다. 찾아가고, 묻고, 요청하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답은 없었고, 자료는 오지 않았으며, 관계자들은 침묵했다. 서류 한 장, 진술 한 마디, 영상 한 컷을 얻고 듣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사실관계 하나하나를 ‘발바닥’으로 모으며 석 달 간의 취재를 이어갔다.
군대 그리고 의료, 두 특수 분야의 교집합을 취재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도를 이어갈수록 취재 의도에 공감해주는 전문가들이 늘어났고, 국회와 군 내부에서도 응원 메시지와 함께 예상치 못했던 도움의 손길이 도착했다. 그 덕에 어렵게 취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여기가 끝이구나. 더는 못 하겠구나.’ 좌절감과 낭패감에 괴로워할 때, “우리의 무기는 충분한 시간”이라며 토닥여주던 양만희, 서경채 부장. 탁월한 판단·분석력으로 길을 보여준 정명원, 이병희 데스크. 외로운 취재 과정을 함께해준 조창현, 김종원, 박하정, 정성진 기자와 작가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먼저 간 아들을 위해서라도 취재를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군 피해치유센터 함께’ 어머니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이 순간에도 주어진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60만 국군 장병께 모든 공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