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하는 자선단체를 바꾸려는 이유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개인적으로 자선단체 한 곳을 정기후원 하고 있다. 국내 및 국제 난민구호를 목적으로 하는 비정부 기구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거창한 목표까지는 아니고, 그냥 공동체에 대한 일말의 책임과 부채감 정도라고 정리하자.


미미한 수준의 기부지만 그래도 늘 의문이 있었다. 내 기부는 과연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 난민에게 돌아가는 지원금과 인건비·조직 운영비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꼼꼼히 따져보고 싶지만 주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일 하자는 곳에 이런 가혹한 질문을 하는 건, 내 스스로 간장종지 그릇 사이즈의 인간이라는 걸 자인하는 건 아닐까.


지난 주말 조선일보 Books에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책이 그 해답 중 일부를 주었다. 영국 옥스포드대 철학과 부교수 윌리엄 맥어스킬의 ‘냉정한 이타주의자’(부키刊)다. 1987년생. 나이 서른에 옥스포드 교수인 이 영민한 철학자는 경제학의 개념을 적극 활용한 ‘효율적 이타주의’로 우리의 선의(善意)를 최대화한다.


신문에도 일부 소개했지만, 그는 학자이면서 실천가다. 공동 설립자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 ‘8만시간’ ‘기브웰(Give Well)’ 등은 종신기부서약을 통해 무려 5억 달러(약 5900억원) 이상을 모금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핵심은 기관·단체의 서열을 매기는 것.


가령 이런 식이다. 우간다의 빈곤 가정에 조건없이 현금을 주는 ‘기브다이렉틀리(Give Directly)’는 총예산 대비 직접 지원 비율이 90%다. 10만원을 기부하면 9만원이 빈곤 가정에 전달된다는 뜻이다. 반면 우간다의 가정을 방문해 말라리아 치료제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건강 상담을 제공하는 ‘리빙굿즈(Living Goods)’는 직접 지원 비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업효과의 추적 관찰 및 평가도 제한적이다. 한마디로 맥어스킬은 어디 기부했을 때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것이다.


이번에는 두 번째 에피소드. 너무 ‘예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신의 영달’이라는 관용어구를 자주 쓰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1980년대. 의사·판사·변호사·대기업 등의 진로 선택을 겸연쩍어하고, 선택 이후에도 뭔가 해결되지 않는 부채감을 가지게 했던.


다시 맥어스킬 교수의 충고로 돌아오자. 캠브리지 의대생 그레그의 고민이 있다. 영국에서 의사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디오피아에서 봉사의 삶을 살 것인가. 맥어스킬은 통계를 제공한다. 영국의사는 평생 2명의 목숨을, 이디오피아 의사는 1년에 4명의 목숨을 구한다. 의사 숫자의 차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담은 이디오피아? No. 다른 대안이 있다. 영국에 남아 의사를 하고, 대신 수익 절반을 기부하라는 것.


영국 의사의 연봉이 미화로 평균 11만 달러. 42년 일하면 460만 달러다. 이디오피아에서는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모기장 보급 예산 3400달러마다 한 명의 목숨을 구한다고 했다. 그레그가 수입의 50%를 기부한다면 42년 동안 676명의 목숨을 구하는 셈. 이디오피아 의사로 일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 건전한 치부(致富)를 적극 추천하는 까닭이다.


이 지점에서 냉정한 혹은 최선의 결론 하나가 도출된다. 기부는 부채감이 낳은 최소한의 알리바이가 아니라, 모든 경우의 수 중에서 최고의 선택일 수 있다는 것.


중요한 건 정의·평등 등 추상적 거대담론에 높이는 목청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자신이 가진 걸 얼마나 나눌 수 있느냐에 있을 것이다.


맥어스킬 교수의 이번 책은 여러 신문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같은 책이 같은 날 여러 신문에 등장하면 민망했는데, 이날은 즐거웠다. 고백 하나 더. 그의 평가 기준 덕분에 후원하는 단체를 바꾸기로 했다. 고마워요, 젊고 멋진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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