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에서 피어난 꽃, 신화가 된 부부

[스페셜리스트 | 문화] 김빛이라 KBS 기자

늦더위에 몸서리치던 가을의 문턱, 이중섭을 연이어 만났다.
학창시절, 그림에 영 흥미가 없던 나조차도 미술책 속 ‘황소’그림에선 ‘역동적인 조선인의 기개’가 느껴진단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던 기억이다. 그만큼 우리 모두에게 친숙하지만 어쩌면 거기까지일 수도 있었던 한 화가를 만나러 어느덧 20만명이 덕수궁을 찾았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도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이 정도면 탄생 90주년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한 화가에 대한 사랑이다.


이중섭의 삶은 왜, 어떻게 ‘신화’가 되었을까. 1916년 태어난 그의 생애 전체가 ‘파란만장한 한국’ 자체였다. 불행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시대, 슬픔과 사랑이 그림과 글로 피어난 건 아무래도 ‘극적’이다.


1945년 봄, 지금은 북한땅이 된 원산에서 식을 올리고 부부가 됐다. 일본에서 만난 조선인 남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긴 마사코는 23살,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땅을 밟았다.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뜻의 ‘남덕’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고,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픈 꿈으로 부풀어있던 그였다.


전시관을 가득채운 그림 앞을 걸으며 생활고와 생이별을 온몸으로 거부하고팠을 시절, 전쟁을 그리는 대신 사랑을 그렸던 그를 상상해봤다. 함께하는 날을 꿈꿨고, 믿었고, 다시 함께할 내 가족의 형상을 담배 은박지에 그려넣는 행위는 예술을 뛰어넘는 일이었으리라. 진흙 속에 연꽃이 피어난다지만, 불행할수록 커졌던 꿈은 행복과 슬픔을 오가는 그의 글과 편지를 더욱더 애틋하고 절절하게 만들고 말았다.


아흔 넷이 된 아내 마사코가 도쿄 자택에서 남편에게 받은 편지들을 꺼내 보이며 속삭이는 다큐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재혼도 하지않고 일편단심 당신뿐이었어요.” 다큐를 만든 젊은 여성 감독은 단 7년의 사랑을 버팀목 삼아 60년을 버텨온 마사코의 삶 자체가 영화였다고 답했다. 한국인 화가 이중섭의 삶을 속속들이 알지 못할지라도, 그 옛날 조선인을 사랑한 일본인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할지라도, 이중섭과 남덕의 삶을 조명한 일본의 다큐는 국경을 넘어 오늘날 모두가 느끼는 울림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줬다.


현실의 벽에 갇혀 꿈조차 적당히 꾸라고 말하는 시대. 전쟁의 참혹함을 대신해 먼 훗날 함께할 가족을 그리며 버텼던 이중섭의 영화같은 죽음도, 한 남자를 그리며 아흔을 넘긴 마사코의 생애도 요즘 시대엔 드물고 드문 동화가 되어버린 것 같다.


고독과 싸우며 자괴감에 가득찬 채 힘없이 써내려간 글씨들, 몸부림치는 소 그림에서 느껴지는 좌절감…. 마사코와 두 아들이 전시와 다큐를 위해 선뜻 편지와 그림을 내어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저 ‘신화’가 된 천재화가가 아니라,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나와 가족의 행복을 향해 끝없이 노력하고자 했던 그의 진심이 오롯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에게 쏟아진 명성과 찬사가 모두 사후의 것이라는 게 통탄할 일이지만, 극영화로 다큐로, 연극과 전시로… 어떤 형태로든 우리 곁에 닿아오는 이중섭이 반갑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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