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팝니다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유머 없는 진지함은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근 다녀온 쿠바 출장에서 풍자로 승부하려는 풍경 하나를 만났다. 아바나 혁명기념관의 한 전시조형물. 실물 크기의 초상을 만화 스타일로 그린 뒤, 촌철살인의 한 줄을 적어 놓고 있었다.


우선 1959년 쿠바 혁명의 실질적 화인(火因)이었던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대통령.
“우리가 혁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옆에는 카우보이 복장을 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있다. “우리가 혁명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차례는 지쳐 보이는 줄리어스 시저 분장의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 “우리의 혁명을 확고부동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치 철모를 쓴 ‘아들 부시’ 미국 대통령. “우리의 사회주의를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국이 보수화할수록, 쿠바에 대해 적대적이 될수록, 이 나라의 사회주의가 공고해진다는 사실 혹은 다짐을 선언하는 풍자였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풍경. 이 ‘자랑스런’ 사회주의 설치 미술이 전시되어 있는 혁명기념관 입장 당시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입장료로 10쿡(cuc)을 받았다. 우리 돈으로는 1만2000원 남짓이지만 쿠바 돈으로 치면 어마어마한 액수다. 전날 만났던 쿠바 공무원은 자기 월급이 25쿡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매표소 직원은 표도, 영수증도 주지 않았다. 그런가보다 하고 티켓 부스 10m 정도 옆의 메인 계단을 올라 입장하려는데, 또 한 명의 제복 입은 공무원이 표를 요구한다. 이미 요금을 냈다고 항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인상 쓰며 화를 내자, 제복의 사내가 전략을 바꾼다.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원을 만든다. 아하. 그런 거였구나.


오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아바나 시내에서 40여㎞ 떨어진, 작가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 입장료는 5쿡이었다. 다행히 실물 티켓을 줘서 안심했는데, 정작 사달은 별도의 사진 전시관에서 났다. 실내의 의자에 ‘앉지 마시오’라는 안내판이 있다. 의자 위 사진에는 웃통을 벗고 근사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헤밍웨이. 전시관 안에는 중년의 여성 안내원뿐이다. 그녀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친절을 보인다. 급기야는 ‘앉지 마시오’ 표지판을 치우며, 사진 속 헤밍웨이와 같은 포즈를 취해보란다. 친절을 마친 그녀가 손바닥을 내민다.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이 두 풍경이 쿠바의 전부를 대변할 수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좋은 추억도 물론 많았으니까. 하지만 체 게바라(1928~1967)의 혁명과 자유를 꿈꾸며 이 나라를 찾은 순진한 방문객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타인에게서 찾으려 했던 판타지에 대한 응징이자 처벌이랄까.


남부러울 것 없는 아르헨티나 의사 아들로 태어나 남의 나라 쿠바에까지 와서 혁명을 불붙였던 체(친구라는 의미)는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이곳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품에 체 게바라가 있다. 시가, 티셔츠, 모자, 열쇠고리, 텀블러, 아르마스 광장에서 팔던 노점 헌책방의 책 표지에도.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의 책 중에 ‘혁명을 팝니다’가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사회주의’와 ‘판매중인 혁명’ 사이의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자본주의를 통해 우리가 이룩했다고 믿은 오늘날의 토대는 또 얼마나 허약한 것일까. 추가 팁을 내고 올랐던 혁명기념관 계단의 표지판에는 “독재자 바티스타를 겨냥한 혁명군의 총알 자국이 계단 곳곳에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유머가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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