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수사와 검찰의 언론플레이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어, 안보이네!”
월요일인 지난 20일 아침 기자실에서 만난 동료 기자가 신문들을 살펴보다가 놀란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검찰의 롯데 비리수사 관련 기사들이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요란하게 장식했다. 하지만 이번 주초에는 롯데를 다룬 헤드라인 기사를 거의 찾기 힘들다. 다른 주요한 이슈들이 새롭게 등장했다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롯데가 뉴스 헤드라인에서 사라진 이유는 역으로 지난주 롯데 기사가 쏟아진 배경을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최근 롯데의 이미지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국내 유통 1위업체로서 진작부터 수많은 ‘갑질 논란’의 주역이었다. 더욱이 지난해 초부터 경영승계를 둘러싸고 신격호 총괄회장의 두 아들인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간에 ‘형제의 난’이 한창이다. 이 과정에서 롯데의 후진적 지배구조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롯데가 한국기업이냐 일본기업이냐는 국적성 논란까지 더해졌다. 최근에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법조비리의 주역인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면세점 입점 대가로 뒷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는 국민정서 측면에서 ‘적시타’였다.


문제는 검찰의 언론 플레이와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언론이다. 검찰수사 이후 언론이 제기한 롯데의 비리혐의는 각종 비자금 조성 의혹,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이명박 정권 시절 특혜 의혹 등 다양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내용, 심지어 수년 전 정부의 제재까지 받아 종료된 사건, 신빙성이 높지 않는 ‘카더라’ 수준의 내용도 상당수다. 이는 일부 언론의 발굴기사를 빼면, 상당수가 검찰이 흘려준 정보에 의존한 탓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이 언론플레이를 한 이유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짚이는 대목은 있다. 검찰은 처음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단순한 재벌 비리 척결 차원인지, 아니면 그것을 빌미로 또 다른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집권 후반기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 방지를 위해 재벌 사정을 통한 군기잡기, 이명박 정부와의 유착비리 캐기가 대표적이다. 롯데는 진작부터 MB정부와 가까운 기업으로 지목돼왔다. 롯데의 부정비리 혐의 기사들은 이런 정치적 의도와 관련된 의문을 차단하는 ‘방패막이’가 된다.


검찰은 지난해 MB 유착기업으로 불려온 포스코의 수사에서 실패했는데, 롯데 수사에 대해 벌써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검찰은 500명에 가까운 대규모 수사인력을 동원해 주요 계열사와 경영진의 사무실 등 30여곳을 샅샅이 뒤지는 ‘저인망식 압수수색’을 펼쳤다. 과거 재벌수사 때 목표를 정확히 겨냥해 포착하는 ‘핀포인트식 수사’를 펼친 것과 차이가 크다. 이는 검찰이 아직 롯데의 결정적인 비리 혐의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과거 검찰이 맡은 주요 사건들의 상당수가 처음에는 요란했다가 결과는 신통치 않아 ‘용두사미’라는 비판을 받았다. 롯데 수사도 자칫 국민 불신만 가중시킬 위험성이 크다. 롯데 사건에서 아직은 ‘용’의 존재가 불분명하다. 언론이 스스로 확인도 하지 않고, 검찰의 말만 듣고 마치 ‘용’이 실재하는 것처럼 앞장서서 선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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