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부대찌개 할머니의 메리 크리스마스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철모르던 유년시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역시 직장을 다닌다면 광화문이 아니겠냐고. 80년 즈음, 셈 빠른 엄마따라 강남 전학가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목격하면서도, 역시 서울의 핵심은 광화문이라는 판타지를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광화문에서 신문사를 다닌 지 20년이 넘었다.


얼마 전 좋아하는 부대찌개 집을 찾았다가 비보를 들었다. 그 주말부터 장사를 접는다는 소식이었다. 5년전 쯤, 맛집 칼럼을 쓰던 당시 자랑스럽게 소개했던 집이었다. 경찰청 뒷골목에 자리잡은 소박한 식당인데, 칠순 할머니가 역시 칠순 즈음 여동생들과 장사하는 독특한 자매집이다.


맛집 칼럼의 콘셉트는 소위 가성비와 친근함이었다. 비싸면서 맛난 요리야 신문 소개까지 할 필요가 있으랴. 게다가 요즘은 좀 순해졌지만, 그 때만 해도 파스타와 스테이크로 대표되는 서양 요리는 생존을 위해서만 먹는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한국 아저씨가 애정하는 편안하고 맛나며 값싼 식당.


육두문자 휘날리는 욕쟁이 할머니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처음 온 손님에게도 이물없이 하오체를 쓰던 할머니는 “이거 먹어라, 이걸 찍어먹어야 맛있다”고 재빠르게 참견하곤 했다. 요즘은 셰프가 연예인을 넘어 정치인이자 종교인 역할까지 하는 세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언제 봤냐고 반말이냐”며 울컥하는 스타일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 할머니들의 참견이 밉지 않았다.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덜 마른 머리를 보자기로 감싼 채 프라이팬의 소시지 오와 열을 맞추던 그녀다. 30년 장사 섭섭하지 않느냐고 묻자 속이 다 시원하단다. 벌써 동네 구민체육센터에 수영반 끊어놨고, 그 후에는 평소 꿈이던 세계여행이나 떠날 예정이라나.


점심 식사 동선도 이제 바꿔야겠지만, 얼마 전부터는 아침 출근길 동선도 바꿔야 했다. 독립문에서 산지도 벌써 12년째. 회사까지 도어투 도어로 걸어서 25분이다. 건강을 위해 일부러라도 걷는 세상인데, 사직동 골목길과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도심 풍경에 반해 감사한 마음으로 출근길을 걸어다니곤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 즐거움도 빼앗겼다. 돈의문 재개발 확정으로 그 골목길들 다 밀어버리고 대단지 아파트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동네는 거대한 크레인의 땅이다. 그러고보니 길건너 재래시장 영천시장 골목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던 헌책방 하나도 지난 달 부터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으로 바뀌었다.


이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을 무시하자는 주장도 아니고, 현대 도시의 편리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또 점점 비싸지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의 안타까움을 이 지면에서 반복할 생각도 없다. 다만 흔하면 더 이상 귀하지 않다는, 이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했을 따름이다.


이제 우리는 뉴욕이건 서울이건 똑 같은 스타벅스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광화문이건 역삼동이건 구분할 필요없는 프렌차이즈 일마레에 앉아 파스타를 먹으며, 빌딩인지 호텔인지 주상복합 아파트인지 구분하기 힘든 건물에서 잠을 자고 집을 나선다.


유년시절 꿈꿨던 판타지 광화문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거대한 흐름을 바꿀 힘은 당연히 없지만, 그나마 버티고 있는 몇몇 도심 뒷골목을 순례하며 소극적 저항과 자위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단골 부대찌개집의 폐업과 속절없이 찾아온 연말이 이런 민망한 푸념을 빚었나 보다. 내일 모레면 벌써 크리스마스. 부디 복된 휴일과 새해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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