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뿌린 환경운동가 박성수씨가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7개월째 구치소에 갇혀 있다. 박씨는 오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공판을 받을 예정인데 검찰은 그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공교롭게 박씨가 뿌린 전단지는 ‘대통령 비판도 못하는 사회’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자신이 명예훼손이라고 직접 고소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으며 검찰은 그를 구속하고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과 경찰의 조치는 그가 뿌린 ‘대통령 비판도 못하는 사회’란 전단지의 내용이 사실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폭행죄도 구체적인 진단이 없으면 주장하기 어려운데 경찰과 검찰은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됐는지, 그리고 그 훼손 정도가 3년이나 갇혀 있어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인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기자의 1심 선고재판이 오는 17일 열린다. 검찰은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고 한다. 이번 주부터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에 대한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도 시작됐다. 모두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다. ‘명예훼손 위크(week)’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명예훼손 재판이 잇따르고 있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구속기소가 최근 2년 새 예년보다 두 배나 늘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OECD 국가 중 명예훼손에 대해 당사자의 고소·고발 없이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명예라는 것이 대단히 주관적인 가치의 영역이어서 본인이 아니면 훼손여부와 정도를 알 수 없지만 국내법은 제3자의 고발에 의한 직권 수사를 허용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신고나 방심위 직권으로도 인터넷 게시글의 명예훼손 여부를 심의해 해당 글을 삭제하거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도대체 개인의 인격권에 해당하는 명예훼손 여부를 제3자가 어떻게 알 것이며, 무슨 법적 이익이 있어 대신 신고할 것인가? 방심위는 모든 사람의 명예훼손 여부를 알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인가?
예를 들어 ‘기레기’라는 표현에 대해 대부분의 기자들은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의 언론현실을 감안해 자성의 계기로 삼고 있다. 하지만 기자 아닌 누군가가 ‘○○○기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삭제를 요청했을 때 관련 글이 모두 없어질 수도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 여당에 불편한 글을 없애기 위해 친정부 단체들이 신고를 남발할 수도 있다. ‘댓글부대에 이어 신고부대가 활개를 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온라인상의 비판여론이 차단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수백 명의 법률가와 심지어 방심위 내부 직원들까지 공개 성명을 내며 개정안에 반대했다. 하지만 방심위는 제대로 된 전문가 공청회 한번 없이 개정을 강행했다고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검열의 위험성마저 농후한 개정안이 이토록 졸속으로 통과됐다니 어이가 없다.
우리 헌법 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와 검열의 금지를 명문화하고 있다. 아울러 언론 출판에 의해 명예를 침해당했을 때 피해자가 피해 배상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명예훼손에 대해 피해자가 직접 민사적으로 해결하라는 게 헌법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기관인 방심위가 인터넷 게시물을 직권심의한다는 것은 ‘검열의 부활’을 의미한다. 방심위는 위헌적 요소가 많은 심의규정 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