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 존치가 로스쿨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스페셜리스트 | 법조] 정현수 국민일보 사회부 기자

‘희망의 사다리’는 2017년 폐지될 사법시험의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슬로건이다. 이미 사법시험을 유지해야 한다는 법안이 국회에 올라 있고,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에서는 찬반으로 나뉜 법조인들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로스쿨 출신 자녀를 둔 국회의원 사회 고위직 인사들의 청탁·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법시험 존치론자들이 내건 문구가 더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수년 간의 논의 끝에 폐지키로 한 사법시험을 되살리는 건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사법시험을 대체할 로스쿨 제도에 맞춰 법조인력 양성제도가 모두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다시 거슬러 사법시험을 존치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①로스쿨 제도 안에서 보완 불가능한가 ②사법시험이 이를 보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돈스쿨’이라 불리는 로스쿨의 비용문제를 보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등록금을 비롯해 로스쿨을 다니려면 1년에 어림잡아 2000만~3000만원은 든다고 한다.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이는 로스쿨의 장학금 제도 확충을 통해 보완이 가능하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제시한 지난해 1학기 통계를 보면 장학금을 받고 있는 로스쿨 학생 3662명 중 1204명은 연소득이 2600만원 이하인 가정에 속해 있다. 경제적 약자 등을 위한 특별입학 전형도 열려 있다. 지난 4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 61명은 경제적 배려자 특별전형으로 로스쿨에 입학했다. 부족하면 이 비율을 더 늘릴 방안을 고민할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법시험이 저비용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사다리’라 믿는 것은 신기루다. 고시원 골방에 앉아 법전만 판다고 사법시험에 합격하던 시절은 지났다. 유명강사의 수업도 들어야 하고, 각종 해설서도 구입해야 한다. 2.94%에 불과한 합격률을 고려하면 경제적 약자가 이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이를 공정한 기회라 부르고, 희망의 사다리라고 칭하는 것은 기만에 가까울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사법시험 출신과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분석한 서울대 로스쿨 김재협 교수팀의 논문은 2000년 중반 이후부터 두 집단 사이의 배경수준에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법고시가 학력에 관계없이 공정한 기회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1981년부터 지난해까지 사법시험에 합격한 1만9214명 중 전문대나 고졸 학력을 가진 사람은 28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2006년부터는 법학과목 35학점 이수를 응시자격으로 걸고 있다.


오히려 ‘SKY’로 불리는 명문대에 편중된 높은 사법시험 합격률은 로스쿨 제도 시행 이후 점차 완화되고 있다. SKY 로스쿨을 나오지 않으면 판·검사가 될 수 없다는 말도 비약이다. 지난 6월 법원의 단기경력법관 임용결과를 보면 비서울권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46%를 차지했다. 출신 대학 현황으로만 따져 봐도 SKY 출신은 57%에 그쳤다.


결국 논의의 초점은 현재 로스쿨 제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이 틀 안에서 바로잡을 수 있느냐로 옮겨가야 한다. 사실 사법시험 존치 논란은 정부와 로스쿨 스스로 부추긴 면이 있다. 가뜩이나 비싼 로스쿨 등록금은 5년 사이 연간 평균 100만원이 올랐다. 일부 로스쿨들은 장학금 지급률을 더 낮추겠다고 공언하며 여론에 역행하고 있다. 로스쿨은 사법시험 존치론과 싸울 때가 아니라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만들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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