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은 우리나라 인구의 몇 퍼센트를 차지할까. 세상의 반은 남자라는데, 정말 딱 50%일까. 통계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행정안전부의 ‘2020년 주민등록인구현황’에 따르면 남성의 비율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9.9%로 절반에 아주 조금 못 미친다. 여성은 그보다 0.2% 많은 50.1%다. 거의 50:50이다. 그렇다면 기사에선 남성이 몇 퍼센트의 비율로 등장하고 있을까. 인구 비율대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까.
기자협회보가 2019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2년 반 동안 10개 종합일간지와 9개 방송사의 기사에 100번 이상 인용된 1110명을 분석한 결과, 언론은 남성의 목소리를 실제 인구 비율보다 크게 반영하고 있었다. 언론에 인용된 남성의 비율은 83.8%로, 실제 비율인 49.9%를 훌쩍 뛰어넘었다. 반면 여성은 16.2%로 남성과 격차가 67.6%p에 달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기사 속 남성의 목소리는 여성보다 5배는 컸다.
성별뿐만이 아니었다. 연령과 직업에서도 기사에 인용된 인물들은 실제 사회와 큰 괴리를 나타냈다. 연령, 성별, 직업 비율은 ‘50~60대, 남성, 관리자’에 지나치게 편중돼, 그만큼 다른 연령과 성별, 직업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는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은 50~60대 남성 관리자의 목소리를 반복적으로 증폭하며 사회의 다양성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남성 쏠림 현상은 여러 지표에서 나타났다. 분석 대상 19개 언론사별로 인용량 상위 100명을 추리고, 그 중 여성 비율을 분석했을 때 언론사들의 평균은 14.6%에 불과했다. 가장 높은 곳이 MBC(20%)였고, 그 뒤를 채널A·SBS(19%), 한국일보(18%), MBN·YTN(17%) 등이 따랐다. 여성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국민일보·내일신문(10%)으로 10명 중 1명 수준이었다.
정치인과 외교 인사, 공직자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자가 직접 발굴할 수 있는 전문가와 일반 시민들에서조차 여성의 목소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통계청의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라 언론에 100번 이상 인용된 1110명 중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를 분류한 결과, 전체 277명(성별 미상 1명 제외) 가운데 여성은 58명(20.9%)으로 남성(79.1%)의 약 1/4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는 외부 자료에서도 비슷한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KBS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이 ‘뉴스룸’ 편을 위해 만든 ‘KBS 9시 뉴스의 취재원 통계 자료’에 따르면 9월 한 달간 출연한 전문가 204명 중 여성은 겨우 29명(14.2%)이었다. 반면 남성은 175명으로 전체의 85.8%를 차지했다. 비전문가에선 수치가 조금 완화됐지만 여전히 남성(65.7%) 출연자가 여성(34.3%)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기사 속 연령 불균형 역시 심각했다. 지난해 주민등록인구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세대별로 고르게 분포한 가운데 30~49세와 50~69세의 비중이 높다. 그러나 기사에선 50~69세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다. 50~69세는 우리나라에서 29.7%를 차지하지만 100번 이상 인용된 인물 1079명(연령 미상 31명 제외) 중 50~69세는 73.0%로, 언론에 이들의 목소리가 과하게 등장했다.
반면 15~29세와 30~49세 연령층의 목소리는 실제 인구 비중보다 적게 표출됐다. 15~29세는 우리나라 인구에서 17.9% 비율이지만 기사에선 겨우 0.8%로 이들의 목소리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30~49세 역시 실제 사회에선 29.3%를 차지하는데 언론에선 15.9%의 비율로 인용되는 데 그쳤다. 그나마 현실과 가장 비슷한 비율로 인용된 세대는 70세 이상으로, 실제(11.0%)와 인용 비율(10.2%)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언론 인용된 직업, 대부분 관리자·전문가… 서비스직 등은 0%대
직업 분포에서도 실제 사회와 뉴스는 괴리감이 있었다. 언론에 100번 이상 인용된 인물들의 직업 대부분은 ‘관리자’와 ‘전문가’에 편중됐다. 통계청의 ‘2020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 중 관리자는 1.5%뿐이지만, 언론에 인용된 인물 중 관리자 비율은 74.4%에 달했다. 그 뒤를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25.3%)가 이었고, 사무 종사자와 서비스 종사자는 각각 0.2%와 0.1%에 불과했다. 판매 종사자와 농림·어업 숙련 종사자,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 장치·기계 조작 및 조립 종사자, 단순노무 종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00번 이상 인용된 인물을 대상으로 직업을 조사했기에 관리자로의 쏠림 현상은 당연할 수도 있겠다. 다만 관리자 안에서도 유독 특정 업종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국회의원, 장관, 기업 대표 등 ‘공공 기관 및 기업 고위직’ 비율이 89.7%(734명)나 됐고, 반면 법률·경찰·소방 등 ‘전문 서비스 관리직(5.4%)’이나 ‘행정·경영 지원 및 마케팅 관리직(3.5%)’, ‘판매 및 고객 서비스 관리직(1.3%)’은 그 비율을 합해야 가까스로 10%를 넘었다. 특정 기관과 업체의 대표만이 과연 적절한 인용 대상인지 묻기 전에, 그 대표들 안에서조차 인용의 차별이 뚜렷했다.
관리자가 과다하게 인용될 동안 일반 시민의 목소리는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특히 언론은 일반 시민의 목소리를 인용할 때도 특정 범주에서만 다루는 경향성을 보였다. 2019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언론에 한번이라도 인용된 6만3914명 중 일반 시민 100명을 표본 추출한 결과, 대부분 사건·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근무 중 사망한 노동자의 유가족들(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김원종씨 아버지 김삼영씨,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등)이나 코로나 환자(코로나 확진된 학원 강사 A씨 등)의 목소리로 일반 시민은 언론에 등장했다. 올해 상반기 부각된 아동학대 사건 관련자들(아영이 사건 피해자 아버지 A씨, 정인이 양부 안모씨 등)이나 성범죄 사건 관련자들(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A씨, n번방 가해자 전씨 등)의 모습으로 언론에 인용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시대, 방역 현장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와 방역조사관들의 목소리도 가려졌다. 이들 역시 전문 인력인 데다 현장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방역 관계자나 대학 교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면당했다. 언론에 인용된 6만3914명 중 간호사는 39명, 방역조사관은 15명에 머물렀고, 국내 간호사 중 가장 많이 인용된 안세영 서울시보라매병원 간호사의 인용량도 7건으로 그 수치가 미미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1934건)나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708건) 등이 수백 건 인용되며 인용량 순위 상위권에 몰려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어떻게 조사했나 10개 일간지, 9개 방송사 기사 수집·분석
기자협회보는 발언 빅데이터 분석 업체 ‘스피치로그’에 의뢰해 지난 2019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2년 반 동안의 기사를 수집했다. 언론사와 분야(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 기사제목, 보도일자, 발언자와 발언 내용, 핵심 단어를 기사에서 추출했고 이를 토대로 분야별, 시기별, 언론사별 가장 많이 인용된 인물 등을 분석했다.
데이터를 수집한 언론사는 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10개 종합일간지와 KBS MBC SBS YTN 연합뉴스TV 채널A JTBC MBN TV조선 9개 방송사다.
다만 기술적 한계로 한국일보(2020년 3월11일부터) JTBC(2020년 10월11일부터) 연합뉴스TV·채널A·MBN(2020년 12월9일부터) TV조선(2020년 12월21일부터) 6개 언론사는 스피치로그에서 보유한 기간의 데이터만을 사용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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