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대심판정 입정 순간, 문형배 대행 얼굴서 파면 직감"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 현장
대심판정 들어간 기자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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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에서 방청객들이 선고를 지켜보고 있다. 방청석 맨 앞줄에 노트북을 열고 타이핑을 치고 있는 취재진의 모습이 보인다. /뉴시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선고가 내려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1층 대심판정 출입문이 4일 오전 10시10분쯤 열렸다. 취재진 10여명은 역사적 현장을 취재한다는 약간의 기대와 흥분, 부담감이 뒤섞인 감정을 애써 누르며 방청석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았다.

그들과 함께 들어온 국회 측 대리인단, 윤석열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각각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대화하며 긴장을 푸는 모습이었다. 481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방청에 당첨된 시민 20명은 역사적 순간을 직접 보게 됐다는 설렘에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기자들은 이런 대심판정 모습을 재빠르게 스케치해 단톡방에 올렸다. 출입기자들 대표로 대심판정에 들어온 터라 현장 분위기를 밖에 있는 기자들에게 전달해줘야 했다. 수군대던 분위기의 대심판정은 선고 시각이 점점 다가오자 이내 정적에 빠져들었다.

10시59분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재판관 8명이 입정했다. 기자들은 재판관들이 착석할 때 표정, 몸짓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눈여겨봤다. 덤덤하게 앉아 있는 다른 재판관들과 달리 이후민 문화일보 기자의 눈엔 문 권한대행의 상기된 표정이 들어왔다.

이 기자는 “탄핵심판 변론기일 때마다 문 권한대행의 표정이 어둡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오늘은) 그때에 비해 얼굴이 밝아 보였다”면서 “탄핵소추안 인용으로 결론이 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 권한대행이 결정문 요지를 읽어 내려갔다. 기자들 귀에는 결정문을 또박또박 읽는 문 권한대행의 단호한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개별 소추사유에 대한 판단이 하나씩 나오자 기자들은 파면임을 직감했다. 박지영 헤럴드경제 기자는 “문 권한대행이 12·3 비상계엄에 대해 실체적 요건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할 때 파면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 권한대행이 결정문 요지를 읽고 얼마 안 가서 국회 측 대리인단과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습이 취재진 눈에 들어왔다. 국회 측은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반면에 윤 전 대통령 측 분위기는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재판관 전원일치… 윤석열 파면" 주문 듣자 온몸에 소름

마침내 문 권한대행의 입에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가 흘러나왔다.

정원일 파이낸셜뉴스 기자는 “선고요지를 먼저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재판권 전원일치로 인용 결정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쭉 들었는데, ‘파면한다’는 주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박민기 매일경제 기자는 “전원일치라는 말을 듣자 저뿐만 아니라 제 옆에 있던 기자들도 깜짝 놀랐다”면서 “역사적인 순간을 코앞에서 보다 보니까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어떤 감동이 다가왔다”고 했다.

변론 종결 뒤 평의만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선고 기일이 잡히지 않으면서 5대 3 교착설, 6대 2 인용, 5대 3 기각 등 갖가지 전망이 나왔으나 이날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 요건, 포고령 발동, 국회에 군경 투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 등 5가지 탄핵소추 사유를 모두 인정했다.

이후민 기자는 “전원일치 의견이 아니면 사회적 갈등이 더 고조될 수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어 재판관들이 의견을 모아 8대0으로 인용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민기 기자는 “8명 전원 일치로 파면 결정을 하느냐 아니면 별개 소수의견이 나오느냐는 선고 이후 국민 통합 면에서 차이가 있어 헌재가 그런 측면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며 “한눈에 와 닿고 공감하기 쉽게 풀어쓴 헌재 결정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날 대심판정에 들어가 역사의 순간을 직접 마주한 펜기자는 11명이었다. 1일 오후 헌법재판소 출입 40여개 매체를 대상으로 현장 취재 언론사를 추첨해 11개 매체가 당첨됐다.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취재한다는 책임감에 선고 전날엔 밤잠을 설친 기자들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첫 변론기일이 진행된 1월14일 서울 종로구 소재 헌법재판소에서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탄핵심판 사건은 끝났지만, 기자들은 12·3 비상계엄 이후 4개월 넘게 비상대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취재에 ‘올인’했다. 2차례 변론준비기일과 11차례 변론기일을 진행하는 와중에 어떤 날은 늦은 밤까지 마감과 씨름해야 했고,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탄핵심판 선고 현장이 꿈에 나타날 정도였다.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변론이 늦게 끝날 때는 저녁을 건너뛰고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며 “기사 자체를 물리적으로 쓰기 어려운 밤 10시가 넘는 시간에 변론이 끝나곤 해서 개인적으로 제 한계를 도전해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12·3 비상계엄에서 대통령 체포와 구속, 변론, 선고 등 탄핵심판을 취재하면서 기자들은 육체적 피로가 누적하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적잖이 시달렸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취재 경쟁을 벌이면서도 기자로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한다는 사명감, 취재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박지영 기자는 “비상계엄이 터졌을 때 비상계엄이 뭔지 잘 몰랐는데, 탄핵심판 과정에서 나오는 증거들이나 증언들을 보면서 계엄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게 됐다”고 했다. 박 기자는 “곽종근 전 육군 특전사령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의 신빙성을 헌재가 인정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공격을 받고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도 증언해준 그분들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증언대에 설 수 있는 용기를 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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