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식, 12·3 비상계엄 '국회·MBC' 등 점령문건 인정
[윤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
"구체적 지시 못 받아"… 단전·단수 계획은 부인
조태용 "원탁 위 종이 없어"… 이상민 증언과 배치
12·3 비상계엄 선포 수 시간 전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MBC 등 언론사·기관명이 적힌 종이를 건넨 사실을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이 인정했다. 김 전 청장은 윤 대통령이 구체적인 지시는 하지 않았다며 ‘단전·단수’ 등 계획은 부인했다.
1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8차 변론기일에서 김 전 청장은 “조지호 경찰청장은 종이에 10여곳의 장소가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MBC와 JTBC,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이런 장소가 기억이 나느냐”는 질문에 “나중에 보도를 보고 MBC와 여론조사꽃 정도가 기억났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약 3시간 전인 저녁 7시30분쯤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김 전 청장과 함께 상급자인 조지호 경찰청장을 서울 삼청동 안가로 불러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종북좌파’ 척결 등 계엄 이유를 설명했고 김 전 장관은 두 사람에게 한 장씩 종이를 건넸다.
이날 재판에서 김 전 청장은 종이에 적힌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증언하지 않았다. 김 전 청장은 “정식 공문서가 아니라서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며 계엄이 시작되기 전 집무실로 돌아가 평소 습관대로 종이를 문서 세절기에 넣어 없앴다고 말하기도 했다. 파쇄 지시는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청장은 다만 문서 가장 앞에 쓰여 있던 ‘2200 국회’는 기억한다고 말했다. ‘2200’은 계엄을 예정해 뒀던 밤 10시, ‘국회’는 장악해야 할 장소로, 조 청장에 따르면 이렇게 시간에 따라 점령할 장소가 언론사를 포함해 10여 곳이 나열됐다. 윤 대통령 공소장에는 MBC 등 네 개 언론사 봉쇄와 단전·단수 시점이 자정으로 적시됐다.
김 전 청장은 “단전, 단수나 소방청장과 협조하라는 얘기가 있었느냐”는 국회 측 질문에는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안가에 머무른 시간이 10분밖에 되지 않았고 윤 대통령이 종이 내용과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어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안가로 불렀을 때도 저녁을 먹는 자리 정도로 생각했을 뿐 이유를 못 들었다고 했다.
김 전 청장은 “피청구인(윤 대통령)은 이번 계엄이 경고용이라고 주장하는데 단전·단수 조치를 하면 없던 혼란도 생기는 것 아니겠나. 그럴 때 경찰은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느냐”는 국회 측 질문에 “단전·단수 조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보도 검열을 넘어 아예 언론사를 통제한다면 헌법 21조 위반이 된다.
이날 김 전 청장에 앞서 증인신문이 진행된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은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원탁 위에 종이가 있었느냐는 국회 측 질문에 “못 봤다. 없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4일 헌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언론사 단전·단수가 적힌 종이가 원탁 위에 놓여 있어 멀리서 보기만 했다며 이른바 ‘이상민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었다.
탄핵 심판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재판부는 18일 9차 변론기일을 열고 양측이 지금까지의 주장을 정리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추가 변론기일은 이후에도 잡힐 수 있다. 재판부는 14일 평의에서 윤 대통령 측 요청에 따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을 다시 증인으로 부를지 결정한다. 윤 대통령 측은 한덕수 국무총리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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