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MBC를 비롯해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네 곳을 봉쇄하고 전기와 수도를 끊으라고 지시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전면 부인했다. 이 전 장관은 소방청장과 통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1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7차 변론기일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 전 장관은 비상계엄 때 대통령에게 쪽지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윤 대통령 측 질문에 “전혀 없다”고 말했다. 쪽지를 주지 않고 보여주면서 지시한 적은 없느냐고 거듭 질문하자 이번엔 웃어 보이면서 “주면 줬지, 보여주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월26일 윤 대통령을 재판에 넘긴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이 전 장관에게 “자정쯤 MBC와 JTBC,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 단수하라”는 지시 문건을 보여줬다. 이후 이 전 장관은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언론사에 경찰이 투입될 테니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윤 대통령과 대화하러 집무실에 들어가 1~2분 정도 머물렀고 그때 멀리서 책상 위에 ‘소방청’, ‘단전·단수’가 적힌 종이를 본 적은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계엄이 선포된 뒤 자신이 사무실로 돌아가던 차 안에서 쪽지 내용이 신경 쓰여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에게 차례로 전화해 시위 상황은 없는지 묻고 국민 안전을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탄핵 청구인인 국회 측은 소방청장에게도 쪽지 내용을 말했느냐며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물었지만 이 전 장관은 답을 피했다. 이 전 장관은 “수사 중인데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구체적으로 발언하면 소방청장에게 향후 진술에 영향을 주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심지어 “소방청장과 대화 내용은 탄핵 심판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행안부 장관에게는 경찰청이나 소방청에 직접적인 지시를 내릴 권한 자체가 없고 소방청은 그럴 능력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조지호 경찰청장은 윤 대통령에게, 허 소방청장은 이 전 장관에게 언론사 조치 등의 지시를 받았다고 각각 경찰과 국회에서 진술한 상태다. 조 청장은 이번 탄핵 심판 증인으로 채택돼 13일 신문이 예정돼 있다.
문형배 재판관은 심판정에서 이 전 장관의 검찰 신문조서를 보여준 뒤 변호인이 동석해 조사받았고 자신이 서명한 것이 맞는지 확인한 뒤 곧바로 증거로 채택했다. 이 전 장관은 소방청장과 대화 내용은 내란죄 피의자 조사를 받으며 검찰에서 자세히 진술했다고 밝혔다. 조서와 헌재에서 증언 내용이 다르면 어느 쪽을 믿을지는 재판부가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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