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사각의 사각
47곳 중 21곳. 판결문을 역추적해 찾아낸 청소년 방임 가구 중 문을 열어준 집의 수입니다. 나머지 26곳은 끝내 닿지 못했습니다. 대표 사례로 정한 가정에서 취재팀은 오래 머물렀습니다. KTX마일리지가 쌓이는 동안 취재원과 취재팀의 라포르도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80시간째 보온 중인 밥솥을 보여줬고, 물이 넘치는 반지하까지 취재팀을 들였습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가족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지역사회와 중앙 부처가 놓친 청소년들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했고, 청소년 방임의 실태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이에
[이달의 기자상] 시흥 세 살 자녀 살해사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한 아이가 성인으로 커가는 과정에 주변, 나아가 사회 모든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 한다는 말입니다.시흥 세 살 딸 살해사건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 범행 이후 6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밝혀졌습니다. 친모는 자신의 자녀를 살해한 후 공범의 조카를 자신의 딸이라 속였고, 현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범행을 은폐해 왔습니다.사건이 알려지며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고, 현 제도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났습니다. 초기 사건에 중점을 둔 취재는 국가의 아동학대 예방 체계의 허
[이달의 기자상] 식판경제학
저랑 밥 한 끼 하시면서 이야기 나누실 수 있을까요?올 초부터 산업단지 식당을 돌며 노동자들에게 수없이 건넨 질문입니다.남동과 부평, 주안산단 골목들에선 구내식당 혹은 매점 등의 이름을 붙인 식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철저히 이방인 같은 제가 빠르게 밥 한 술 뜨는 노동자들에게 대화를 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10분 남짓으로 짧은 휴식을 방해하는 듯해 미안한 마음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산단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숫자와 통계를 앞세우는 대신 산단을 채우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노후 산단이 처
JTBC '마약왕 박왕열 인터뷰' 보도, 필리핀 감옥 취재로 범죄자 인도절차 이끌어
제427회 이달의 기자상은 9개 부문에서 후보작 86편이 경쟁했다. 63 지방선거와 중동 전쟁 등 어수선한 국내외 환경 속에서도 현장을 지키며 써내려간 수작이 많아 심사위원의 고민도 그 어느 때보다 깊었다.다수의 출품작이 접수돼 경쟁이 뜨거웠던 취재보도1부문은 JTBC의 마약왕 박왕열 인터뷰 및 후속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2023년 필리핀 감옥에 있던 박왕열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등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취재했고, 이 보도에 따라 범죄자 인도절차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국제 마약 조직에 대한 까다로운 취재 여건
[이달의 기자상] 마약왕 박왕열 인터뷰
2021년 1월, 황하나 마약 관련 제보로 시작된 취재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직접 만난 세 명이 마약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마약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나 안전의 문제를 넘어, 한순간에 사회를 무너뜨리는 구조적 범죄라는 걸 배웠다.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조직적 마약 유통 구조를 추적하던 중, 그 정점에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 중인 박왕열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살인 전과로 복역 중이었음에도 국내에 마약을 지속적으로 유통하며 여전히 범죄를 확장하고 있었다.2023년 4월, 첫 필리핀 현지 취재는 완전히 실패였다. 교도소 접근은…
[이달의 기자상] 지연된 정의_부장판사 판결문 늑장 송달
법정에서 선고를 듣다 보면, 그 안에는 무수한 눈물과 안도, 절망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는 걸 느낍니다. 판사의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판사는 법정을 찾은 모든 이에게 최대한 빠르고 명쾌한 답을 줘야 합니다.2월, 한 변호사의 제보가 있었습니다. 선고는 났는데 판결문이 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재판은 끝났지만 판결문을 받지 못해 소송 당사자는 강제집행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판결문 늑장 송달로 멈춰버린 당사자들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니, 문제
[이달의 기자상] 황당한 보증보험 조건 폐지
우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합니다. 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금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돈을 더 내면서까지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합니다. 하지만 집주인의 사망이라는 변수 앞에서, 이 보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세입자들을 보호해야 할 순간에, 전세보증보험은 오히려 세입자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었습니다.취재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은 제도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임대인이 사망하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세입자에게 집주인의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 직접 찾아 상속 포기를 입증
[이달의 기자상] 국내 명문대 '학술 용병' 의혹
학술용병 취재가 드러낸 의혹보다 중요한 건 배경입니다. 전 세계 대학을 한 줄 세워 순위를 매기는 산업이 고등교육 기준처럼 자리 잡은 시대입니다. 여기서 뒤지면 유학생교원 유치 경쟁에도 밀리고, 기부금도 줄어듭니다. 랭킹이 떨어지면 동문들 압박도 거세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의 각 부문을 따져 순위를 집계하는 주요 기관은 영국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학을 죽이고 살리는 기준이 밖에 있는 셈입니다.한글로 쓴 논문은 랭킹에 중요한 학술 데이터베이스 인용 지표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럼 영어로 쓰면 되지 않나? 취
[이달의 기자상] 아들의 첫 출근
19살 아들을 잃은 엄마는 맨발이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날. 회사 문 앞에 주저앉아 단식 농성을 하던 고 박정현씨 어머니의 처연한 그 발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유가족은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진실을 밝혀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취재팀이 경찰 보고서, 부검감정서를 입수해 분석해 봤더니 곳곳이 허점이었습니다. 엉터리 조사 끝에 나온 결론은 회사 책임 없음, 개인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었습니다.방송 이후 다시 열린 산재 심의에서 박정현씨의 죽음은 산업 재해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사망 1년9개월 만입니다
[이달의 기자상] 제주항공 참사 유족의 절규
검은 천막이 걷히고 15개월간 방치되어 있던 대형 마대자루가 열리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 당국이 속도전 하듯 내놓은 99% 수습 완료라는 발표가 무색하게도, 그곳엔 여전히 수습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유난히 안개가 짙은 날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뿌연 현장에서 가장 명확했던 건 마대자루가 열릴 때마다 터져 나오는 유족의 곡소리였고, 그 울음을 따라간 곳엔 희생자의 고스란한 흔적이 있었습니다.다 타버려 남은 게 없다던 당국의 설명은 하나둘 열린 포대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곰팡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