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3회 이달의 기자상] 70년 비극의 씨앗… 그리고 2880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지뢰와 폭발물 피해자가 이렇게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기존 피해자 600여명을 포함한 지뢰, 불발탄 피해자는 2880여명! 3000명은 훌쩍 넘기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전쟁 이후 지뢰 피해자는 반세기 넘게 국가로부터 지원은커녕 어떠한 혜택이나 보살핌도 받지 못했습니다. 한국전쟁 65년이 지난 2015년에야 비로소 지뢰 피해자 지원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사고 당시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지원 금액이 산정돼 오래전 사고일수록 지원금이 낮아지는 ‘역진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50
[제363회 이달의 기자상] 근대건축물 수난사, 210동의 기록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어쩌면 구상 단계에서 묻힐 수도 있었다. ‘인천근대문화유산’ 210개 목록을 들고 무작정 주소지로 향했다. 지레짐작만으로 출발했다. 인천에서 근대건축물 철거 기사가 끊임없이 보도됐던 까닭이다. 사라진 것들의 숫자가 모여야 진전될 수 있는 기획이었다. 고백하자면, 제자리를 지킨 근대건축물을 보고 싶은 마음과 기획기사로 경종을 울리고 싶은 욕심이 충돌했다. 내면의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달여에 걸쳐 골목길을 돌고, 배를 타고, 산을 오르며 현장 취재하는 동안 46개 근대문화유산 목록에 ‘철거
[제363회 이달의 기자상] 소년범 - 죄의 기록
‘왜 하필 소년범의 이야기를 들어?’ 취재팀이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그간 소년범 이야기는 아무도 정면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사회는 그들의 삶을 자극적으로 ‘소비’ 합니다. 그들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재범을 막고, 성인범으로 진화하지 않도록 막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폭력의 피해를 입고 회복하지 못해 학교 밖 가출 청소년이 돼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 또래의 협박으로 조건만남의 미끼로…
JTBC '택배노동자 과로사' 보도… 열악한 실태 조명, 제도 개선 이끌어
이번 362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9개 부문에서 모두 75편이 출품됐다. 이 가운데 19편이 두 차례에 걸친 심사를 통과했고 최종 회의를 거쳐 수상작 7편이 선정됐다.10편이 출품돼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취재보도1부문에선 JTBC가 출품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추정 사망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코로나 시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사례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발생 기사 이후 잇단 후속 보도를 통해 택배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의 실태와 산재 적용을 받지 못한 이유 등 관련 문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고 정치권의 제도개선 움직
택배노동자 과로사 추정 사망
집에 샴푸가 떨어졌다. 나가서 사오자니 귀찮다.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몇 번 ‘띡띡’ 누르니 이틀 뒤 샴푸가 집에 왔단다. 간단한 손가락 운동 한 번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마트를 오가는 수고로움을 덜었다. 하지만 샴푸가 나에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숨 쉬는 공기처럼 누리는 그 ‘2500원의 행복’ 뒤에는 사람의 죽음이 있었다. 새벽 6시 반부터 분류작업을 시작해 오후 2시에야 첫 배송 시작, 하루에 적게는 200개, 많게는 400개의 물량을 소화하며 늦은 밤까지 중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의 삶을 몰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관련 보도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지난 1월이다. 현지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미테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는 과정을 몇 개월간 지켜봤다. 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설치가 끝난 뒤에야 기사화할 생각이었다. 그 전에 보도하는 것은 일본 측에 ‘방해 공작을 하라’고 광고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치 보도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미테구청이 철거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공문 내용을 분석해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을 달라는 시민단체의 요청에 잠시 보류했다가 보도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형제들
1987년 봄,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 참상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12년간 공식 사망자만 513명. 이후 33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을 향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살아서 나왔지만, 사는 게 아니었다. 부산일보는 ‘살아남은 형제들’ 영상 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피해생존자 33인의 증언을 들었다. 힘겹게 길어 올린 기억들을 맞춰 ‘한국판 아우슈비츠’의 실체를 밝히려 했다. 반년 넘게 이어진 인터뷰는 취재진에게도 견디기 힘든 과정이었다. 총 인터뷰 분량만 60시간, 반복된 편집 과정까지 더하면 2
증발, 사라진 사람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지난 5월 히어로콘텐츠팀을 출범시켰다. 동아미디어그룹의 뉴스룸 혁신 전략 보고서 ‘레거시플러스’ 내용을 현실화시킨 조직이다. 팀이 구성되고 가장 먼저 시작한 고민은 ‘히어로콘텐츠’의 개념이다. 깊이 있는 취재, 참신한 그래픽, 영상 등은 필수였다. 출입처에서 발굴한 대형 단독기사는 물론이고 디지털 기술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보도 역시 히어로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템을 선정하기까지 가장 중점을 둔 건 ‘공감’이다. 동료 기자들과 언론 전문가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의 공감까지 불러일
존엄한 노후, 가능한가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면회가 금지된 요양병원. KBS에도 피해 제보가 잇따랐습니다. 5월부터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한 병실에 나란히 누워있는 노인 7명. 낮인데도 다들 자고 있었습니다. 깨어나서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노인에게 ‘영양제’라 불리는 의문의 수액이 투약됐고, 이후 노인이 조용히 잠드는 장면이 KBS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공포스러웠습니다. 미국에선 이미 요양시설 노인들에게 투약된 항정신병제가 사회적 문제가 됐습니다. 환자의 행동을 약물로 통제하는 ‘화학적 구속’(Chemical Restraint)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
'영아 20만원에 입양' 중고거래글 파장
제주에서 발생한 중고물품 거래사이트 ‘아이 20만원 입양’ 게시글 사건을 단독 보도하며 사회에 미칠 파장에 걱정이 앞섰다. ‘아이 입양’ 글을 올린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공분이 커진 상황에서 사건 보도 후 비난으로만 그치지 않을까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해당 게시글을 알게 됐을 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관계와 진위를 놓고 혼란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 사건은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 등 대한민국 한부모가족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사건을 단순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부모가족에 대한 정부와 국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