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꽃가루가 두려운 사람들
해마다 봄은 짧기만 하다. 눈부신 햇살과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1년 내내 봄이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봄은 금방 지나간다. 초여름인 6월만 돼도 햇볕은 따가워지고 장마가 시작된다. 그런데 찬란한 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봄철 날리는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가 심해지는 환자들은 이 시기만큼 고통스러운 시간도 없다. 이맘때 사무실에서도 여기저기서 콧물을 훌쩍이거나 재채기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한다.알레르기의 주요 원인은 누런 먼지처럼 공중에 날아다니는 풍매화 식물의 꽃가루다. 삼나무와 참나무, 오리나무,
스마트폰으로 글쓰기
1주일에 수십 권씩 책 신작들이 쏟아진다. 그 중 가장 직관적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독특한 제목이나 표지, 두께 등 책의 외관이다. 지난달 8일 출간된 드래그 아티스트 모지민 작가의 에세이집 털 난 물고기 모어(은행나무)는 두께에서 확연히 다른 책들과 차별화됐다. 책은 무려 476쪽에 달했다. 통상 에세이는 250~300쪽 안팎이다. 에세이는 가볍게 읽는 장르인데다 MZ세대들은 긴 글을 읽는데 익숙지 않다는 출판사 판단 때문이다. 감히 에세이가 476쪽?이라는 호기심에 표지를 넘겨본 이가 필자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책 분량
한일월드컵 4강 신화 20주년
대한축구협회(KFA)는 2002 한일월드컵 개최 20주년을 맞아 A매치(국가대항전) 기간인 6월 1~6일을 풋볼 위크(가칭)로 정하고 4강 신화 주역과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20년 전 축구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을 비롯해 안정환, 이천수 등 4강 태극전사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이런 모습은 10주년이던 지난 2012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에도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4강 태극전사가 재회해 과거 영광을 추억한 적이 있다.그런 만큼 이번 20주년 행사는 KFA와 축구인 모두 과거 영광 재조명보다 미래
김정은 정권 10년과 한반도, 그리고 앞으로 10년
북한의 2022년 4월이 흥성거린다. 평양에 8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등 송화거리 공사가 마무리되고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살던 5호댁 관저가 있던 자리에는 고급 빌라가 들어섰다. 또 김정은 체제에서는 오랜만에 하루낮 하루밤이라는 영화가 제작돼 전국개봉에 들어갔다.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또 16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형전술유도무기 시험발사를 했다.사실 북한의 4월은 늘 축제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김 위원장의 집권 10년이 더해지
다시 위기에 처한 한국의 강
처음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지난해 12월쯤이다. 중랑천의 풍경이 이전의 겨울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 내 3곳뿐인 철새보호구역으로, 산책만 해도 숱한 겨울 철새를 볼 수 있었던 중랑천과 중랑천한강 합수부에서 보이는 새들의 수가 예전 같지 않아 보였다.서울 도심에선 드물게 겨울 철새의 서식처 역할을 하는 중랑천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취재해 보니 최근 수년 사이 이 하천을 찾은 철새의 수가 급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의 논문, 10여년치의 환경부 조류센서스, 시민과학 형태의 시민모니터링 조사…
'50조 추경'의 배신
금리가 뜀박질하고 있다. 대표 시장금리로 통하는 3년 만기 국고채(국채) 금리는 지난 1일에 전 거래일보다 0.121%포인트 오른 연 2.784%에 마감했다. 2014년 6월12일(연 2.789%) 후 최고치다. 국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대출금리도 뛰는 중이다.통상 은행들은 국채 금리를 비롯한 시장금리에 추가로 금리를 얹어 대출 금리를 산출한다. 우리은행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우리아파트론 고정형의 지난달 29일 금리는 연 4.10~6.01%로 집계됐다. 전날보다 0.11%포인트가량 오른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6%를 넘어선 것
민주노총 '노정교섭' 주장이 놓치고 있는 것들
민주노총이 윤석열 당선자에게 만나자고 제안했다. 3대 핵심 과제를 들었다. 5인 미만 기업과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문제,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 재편에 따른 일자리 문제,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의 상징인 비정규직 문제. 모두 한국 노동시장이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다.민주노총은 이를 위해 노정교섭, 즉 노동조합과 정부의 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하고만 이야기해서 될 일은 아니다. 위 문제들은 노동자들을 고용해서(혹은 고용을 회피하면서) 보수를 주는 주체, 곧 민간 부문 사업주들의 이해관계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당선인께
먼저,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국민만 보고 통합의 정치 하겠다는 일성에 담긴 뜻이 5년 내내 변함없길 바랍니다. 국민이라는 큰 단어가 성별세대를 막론하고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까지도 구분 없이 품기를 기대합니다.저는 오늘 당선인께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기다리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일화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조혼을 한 이 90년대생 여성은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온몸의 멍과 피딱지 상처를 모두 휴대폰으로 찍어뒀는데, 사진을 남겨놓고 목숨을 끊을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을 따라 외출하게
0.73%p에 숨겨진 것
선거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도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어느 지역, 어떤 투표함이 먼저 열렸느냐에 따라 개표 상황도 반전을 연출했다. 마치 초보다 작은 단위로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를 관람하듯, 유권자들도 뜬눈으로 밤을 샜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적은 표 차이로 대통령이 결정났다. 24만7077표, 0.73%p 차이.문제는 깻잎 한 장 차이에 숨겨진 분열이다. 이번 대선에서 지역 구도는 부활했고, 세대 갈등은 심화했다. 여기에 남녀갈등까지 더해져, 그 어떠한 선거보다 더 촘촘한 균열이 그 이빨을 드러
사시사철 위협적인 산불, '시즌'이 사라졌다?
지난겨울부터 바싹 메마른 날씨가 이어지더니 봄의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대형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산불 발생을 알리는 산림청 메시지가 하루 10건이 넘기도 한다. 그러더니 지난 4일 경북 울진과 강원도 강릉 등 동해안을 중심으로 또 다시 기록적인 산불이 발생했다.2019년 4월4일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식목일을 하루 앞두고 강원도 고성과 속초, 강릉, 인제, 동해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 태풍급 강풍이 몰아치며 일명 도깨비불이라고 불리는 비화 현상이 나타났고 소나무 숲은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민가까지 불길에 휩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