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와 미국 외교

[이슈 인사이드 | 국제·외교] 권희진 MBC 기자

권희진 MBC 기자

1969년, 작은 키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하버드대 교수 헨리 키신저가 미국 닉슨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등장했다. 이후 그의 손을 거친 미국의 대외 정책들은 사실상 지금의 국제 질서를 만들어냈다. 키신저는 베트남전 종전 협상을 마무리했고,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이끌어냈다. 중국과 불편한 사이였던 소련은 중국과 미국이 관계 개선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후 미중 관계에서 자극받은 소련은 미국과 ‘데탕트’라고 불리는 관계 개선에 돌입했고 냉전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중국을 움직여 미중소 3국의 삼각 균형을 만들어 평화와 안정을 꾀해 보겠다는 그의 커다란 그림이었다.


그러나 키신저는 주요 국가들의 힘의 균형을 중시한 것만큼이나 국제 사회의 약소국들을 희생이 숙명인 장기판의 졸처럼 하찮게 여겼다. 장기판의 졸을 전략적으로 버리듯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고한 나라들에게 몹쓸 짓을 서슴지 않았다. 베트남전 당시인 1969년부터는 북베트남으로의 보급로를 차단한다며 애먼 캄보디아에 융단폭격을 승인해 1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결과 캄보디아의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크메르루즈에게 집권의 길을 열어주게 됐다. 이는 킬링필드로 상징되는 200만 명 규모의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71년에는 지금 방글라데시로 독립한 당시 동파키스탄인에 대한 파키스탄의 인종 청소에 국제법을 어기고 무기 지원을 승인했다. 최소 3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무렵 파키스탄은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려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을 통해 미중 양국의 밀서가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73년, 미국은 칠레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 아옌데 정권을 전복한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를 배후 지원했다. ‘우리가 쿠데타를 도왔다’는 키신저의 전화 통화 기록이 2004년 기밀 해제돼 공개됐다. 키신저는 칠레에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된 것이 공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군사 쿠데타를 도왔다. 그는 ‘칠레인 스스로가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며 칠레인이 투표로 정부를 선택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미국을 등에 업은 피노체트 독재정권은 18년을 집권하면서 수만 명의 시민을 죽이고 고문하고 감금했다. 미국은 칠레인들의 비극과는 상관없이 피노체트의 집권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봤던 것이다. 칠레 외에도 미국이 ‘안정’을 이유로 군부 쿠데타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사례와 의혹들은 이후에도 여러 국가들에서 나타났다.


이처럼 외교의 대가라는 평가와 전범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키신저와 미국의 대외 정책을 분리해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키신저는 모두 12명의 미국 대통령에게 외교 정책을 조언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1/4이 넘는 숫자다. ‘극도의 현실주의자’로 불리는 그는 “미국에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미국의 진심을 고백하는 듯하다. 미국과 함께 ‘가치외교’를 펼치겠다며 미국조차 앞질러 달려 나가는 우리 정부에게 들어보라는 말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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