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대 ‘로동신문’에 대한 계산사회과학적 연구>란 제목의 논문<작은 사진>이 있다. 부제는 ‘통시적 단어 임베딩을 활용한 담론 분석을 중심으로’다. 함께 등장하는 게 생소한 단어들이 한 어구에 나란히 쓰였다. 논문은 북한 담론 분석에 인공지능(AI) 방법론을 끌어온 드문 사례다. 위 논문으로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학위를 받은 당사자이자 IT 전문기자인 류현정 조선비즈 콘텐츠전략팀 부장의 독특한 이력이 이런 결과물을 낳았다.
연구는 2012~2024년 13년에 걸친 로동신문(노동신문) 기사 선별로 시작한다. 북의 공식적 주장이 나타나는 사설, 정론, 론설, 론평 등 주장형 텍스트 1만4223건을 뽑아 코퍼스(corpus·연구용 텍스트 데이터 모음)를 구축했다. 이를 시대별로 나눠 AI(FastText)에게 읽혀 주요 단어 간 관계를 학습시켰다. 기존 담론 분석이 특정 단어 빈도 등을 중심으로 연구자의 정성적 해석에 기댔다면 이는 단어와 단어 사이 관계를 측정하는 ‘단어 임베딩’을 통해 정량적 접근을 가능케 한다. 이를 통해 북의 시대별 단어 지도를 그리고 비교한 게 큰 틀이다.
2002년 전자신문 입사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반도는 왜 분단됐을까”란 질문을 오래 가져왔다. 최첨단 IT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세계 변화와 우리 현실이 뒤섞인 의문이 더 커졌다. 2000년대 북은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IT 단번도약’ 주창 후 IT를 통한 경제난 극복을 이행하던 참이었다. ‘북이 IT를 선택하지 않으면 국가 유지가 어렵고, IT를 선택하면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생각 속에 2008년 같은 학교 석사 과정에 진학했고, 2012년 북한 휴대전화에 관한 국내 첫 논문을 썼다.
2010년 조선비즈 창간과 함께 이직해 여러 부서를 거쳤다. 계속 IT 전문기자 길을 걸어오다 2019년 북미 정상들이 만난 하노이 회담을 보고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이번 논문은 그 결실이다. 특히 북한 연구에 AI 방법론을 도입하면서 ‘이런 패턴이 발견됐다’는 결론에 그치지 않도록 설계부터 역사 구조 이론을 반영, ‘이론 주도 접근’을 취했다.
그 결과 북한 담론이 김정은 집권 10년 만에 ‘민족’에서 ‘국가’로, ‘사상 중심’에서 ‘제도의 지배’ 구조로 변한 사실을 확인했다. 핵은 ‘협상 수단’에서 ‘불가역적 상수’로, 적대 구도는 ‘미제 대 조선민족’ 양자에서 ‘적대세력 대 우리국가’의 추상적 대결로 이동해 있었다. 류 부장은 “‘노딜(No Deal)’로 끝난 하노이 충격이 커 ‘민족’과 ‘국가’ 어휘의 증감 교차도 그쯤으로 예상했으나 데이터상 시점이 이르게 나와 처음엔 안 맞는다고 봤다. 분석을 통해 어휘의 세대교체가 앞서 진행됐고, 북이 세계질서와 상호작용을 준비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번 논문은 북한과 IT 모두에 관심·역량이 있는 연구자이기에 가능했다. 그는 “대북 정책이 아니더라도 민주주의 국가가 권위주의 국가 이상의 정책 일관성을 가지려면,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 수립을 위한 모듈이 거버넌스 안에 필수적”이라 제언했다. 업계 동료들에겐 “20년 넘게 IT 출입을 했는데 예견 중 실현 안 된 게 드물다. 이번 방법론은 커뮤니티나 댓글 여론을 살피는 보도 등에 쓰일 수도 있다. 모든 기자가 관련 분야에서 AI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시도 해봐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