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올해 3분기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했다. 호실적의 배경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 AI 검색과 콘텐츠 요약 서비스 등이 유의미한 성과를 낸 것이다. 언론계는 네이버가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를 개발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뉴스 데이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AI가 견인한 네이버의 매출에서 언론사의 몫은 없다. 애당초 언론사들은 핵심 자산인 뉴스 데이터를 AI 개발에 활용하도록 동의한 적도 없다. 이는 단순히 개별 언론사의 손익을 넘어 AI 시대 뉴스 생태계의 지평을 뒤흔들 본질적인 문제다.
AI 기술을 두고 네이버와 언론사가 형성한 구도는 낯설지 않다. 2000년대 초 시작한 네이버의 뉴스 포털 서비스를 떠올려보자. 당시 언론사들은 디지털 기술의 파괴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자체 플랫폼 투자는 뒷전으로 미룬 채 포털에 뉴스를 저렴하게 넘기고 눈앞의 ‘트래픽 수익’에 만족했다. 안일한 판단은 결국 주도권 상실로 이어졌다. 수익 배분 재조정 등 때늦은 협상에 나섰지만 협상력은 없었다. 오늘날 언론사는 뉴스 생산자 역할만 남긴 채 유통과 영향력 모두에서 포털에 끌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AI 기술은 뉴스 소비에 관한 근본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포털 시대에는 독자의 ‘클릭’에 따른 언론사 홈페이지 유입과 구독 전환의 기회라도 있었다. 그러나 AI 시대 뉴스 소비는 ‘요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뉴스는 AI가 제공하는 최적의 답변을 만들어내기 위해 활용하는 ‘중간재’ 정도로 전락할 것이다. 실제 이탈리아와 미국 등 해외에서는 구글의 AI 요약 기능 도입 후 언론사 웹사이트 트래픽과 광고 수익이 급감한 사례가 이미 보고됐다. AI 혁명이 키워갈 과실에서 창작자인 언론사는 배제된 채 유통을 장악한 플랫폼만 성장하는 구도가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를 풀기 위해 지상파 3사가 네이버에 AI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행법상 언론사가 침해당한 저작물을 특정하고 손해를 증명해야 하는데 AI 학습은 ‘블랙박스’ 안에서 이뤄지기에 입증이 쉽지 않다. 데이터와 기술을 독점한 플랫폼의 협조가 필수적이며, 설령 협조가 있더라도 손해액 산정 등에서 법리적 난관이 크다. 법원이 언론사의 손을 들어주기만 기다리는 것은 무모한 행위일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법리 공방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상파 3사의 소송은 승패를 떠나 AI 시대 데이터 권리 문제를 사회에 환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AI 학습의 불투명성과 창작자 권리가 배제되는 구조 등을 제대로 밝힌다면 그 자체로 AI 데이터의 이용에 관한 입법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계가 단단한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한다면 플랫폼을 법정 밖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뉴스 무단 사용 사례를 공동으로 수집하고 AI 뉴스 이용에 관한 규칙이나 보상 체계 등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면 협상력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반독점, 상표권 침해, 행정 개입 등 다각도 압박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해외 언론의 사례도 참고해 볼만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AI 기술은 숨 가쁘게 진화하고 있다. 법원 혹은 정부 판단만 기다리다가는 이번에도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포털 시대 실패를 AI 시대에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번만큼은 언론계가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