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 17년 만에 폐지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재편된다. 기존 방통위 폐지에 따라 내년 8월까지 임기가 남아있던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교체가 사실상 확정됐다. 이진숙 위원장은 7일 정부여당의 정부조직 개편 방안이 발표되고 이틀 만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방송미디어통신위 설치법’을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은 25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속도전 방침을 밝혔는데, 이 위원장의 법적 조치 예고까지 이어지며 조직개편 이후에도 파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진숙 위원장은 9일 정부과천청사 방통위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방송미디어통신위법이 통과되면 직원들은 승계되고 정무직 위원만 직을 잃게 된다. 이진숙 면직, 사실상 축출이 목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진사퇴 가능성은 일축하며 법 통과 이후엔 “법을 바꿔서 사람을 잘라내려는 것인데 법의 판단을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공청회 나흘만에 법안소위까지 일사천리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신설된 방송미디어통신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방송진흥정책기능을 이관받고, 위원 수는 상임 5인에서 상임(3인)+비상임(4인) 총 7인으로 늘어난다. 방송미디어통신위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방통위 개편 “시급성”의 근거이기도 한 개정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EBS법)의 시행령 및 규칙 제·개정 등 후속 조치를 이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조직 개편 발표 이전 5일 국회 과방위가 진행한 ‘방송미디어통신 거버넌스 개편’ 공청회에선 방송미디어통신위 제정 법안의 주요 내용이 공개됐다. 앞서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과 김현 의원이 발의한 ‘시청각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 제정 법안’ 두 가지를 절충한 안이다.
구체적으로 방통위 명칭을 방송미디어통신위로 바꾸고 과기정통부의 유료방송 업무와 방송진흥정책국 기능을 방송미디어통신위로 이관하는 대신 이용자 보호 업무 중 해킹 관련 이용자 보호 평가 업무를 과기정통부로 옮기는 내용이 담겼다. 또 7인 위원 중 상임위원은 위원장, 부위원장 등 3인으로 하고 대통령과 국회 여야 정당이 각 1명씩 추천하도록 했다. 나머지 비상임위원 4명은 여야가 2명씩 추천한다. 여야 4대3 구도다. 윤석열 정부 체제에서 위법성 논란이 지속됐던 ‘방통위 2인 체제 의결’을 염두에 두고 회의 개의 요건은 기존 2명에서 3명으로, 의결 요건은 출석 위원 과반으로 강화했다.
다만 당초 김현 의원 법안에 들어있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진흥·규제 등 시청각미디어 전반을 포괄하는 정책 업무는 앞서 8월27일 과방위 법안소위 논의를 통해 제정 법안에선 배제하기로 결정됐다. 최민희 의원 안엔 방통위원이 9인으로, 김현 의원 안엔 5인으로 명시됐으나 해당 법안소위에서 “유료방송 기능 이관으로 업무의 양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7인 정도가 적정하다”는 노종면 민주당 의원 제안으로 최종 7인이 되기도 했다.
김현 의원은 이날 공청회에서 제정법 발의에 대해 “방송 진흥 분야 등의 영역이 들어와 조직이 커지기 때문”이라며 “‘OTT는 왜 빠졌냐’는 의견이 있는데 (부처 간) 이해관계, 이견이 많았다. 3단계에서 논의할 거고, 정부가 성격에 맞춰 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향후 법안 통과 계획에 대해 11일 과방위 전체회의 의결, 15일 법제사법위원회 상정, 18일 본회의 상정 등 일정을 제시했다.
◇“13년 논의했다”지만… 후속 논의 불가피
이날 공청회에선 해당 제정 법안에 대해 “졸속 추진”, “이진숙 찍어내기 법안”이란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어 방통위를 축소한 이후 13년 만에 나온 정상화 법”이라며 “13년 전부터 계속 논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기정통부의 일부 기능을 떼어오고, 위원 증원 수준의 제정 법안 내용을 두고 자칫 이진숙 위원장을 내보내기 위한 목적으로만 읽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 제기됐던 △방통위의 과잉 정치화, 전문성 문제를 비롯해 △3개 부처로 분산된 미디어 관련 정부 조직 개편 △글로벌·국내 OTT 간 규제 형평성 등 방송 산업 위기에 대한 정책 마련 등 기존 미디어 거버넌스 체제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법안이라는 언론계, 전문가들의 지적도 상당하다. 정부조직 개편 발표에서 언급된 ‘미디어발전민관협의회’가 이에 대해 후속 입법을 할 수 있도록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태다.
이종관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OTT 포함 미디어 전반에 대한 통합적 규제나 정책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인정한다. 그런데 3개 부처 중심으로 공회전을 돌아 결국 바람직한 방향이 있음에도 이해관계에 따라 불발된 안 좋은 케이스”라고 우려했다. 이어 “새로운 정부 기구 출범에 가장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인적 구성이다. 정파성 문제와 공영방송 등 정치적 영향력이 큰 부분에만 논의가 집중됐던 한계 등을 해결할 만한 위원들이 구성되기만을 희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위원 7인’ 방침에 대해서도 “왜 상임 3인, 비상임 4인지는 설명이 없다”고 지적하며 “업무 증가로 5명으론 부족해 2명을 더 증원한다면, 상임 두 자리가 늘어나야 하는 게 맞다. 비상임 4명은 출근을 매일 안 한다는 얘기인데 굳이 7명으로 늘릴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언론노조는 방송3법 시행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야 할 방통위의 정상화가 우선 과제라는 입장”이라면서도 “규제나 진흥 영역에 대한 조정, 유관기관이 협조하지 않은 문제 등 미진한 부분이 있긴 하다. 단계적으로 밟아가며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좀 더 바람직한 규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