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수신료 통합징수법이 17일 본회의에서 재표결 끝에 통과됐다. 최상목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의요구(거부권)를 행사해 법안 폐기 위기를 겪었던 수신료 통합징수법은 이번 본회의 재의결로 끝내 소생했다. 이로써 수신료 징수·고지 방식은 다시 통합징수로 돌아가게 됐다.
이날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로 다시 국회로 이송된 8개 법안에 대한 재표결을 진행했다. 이 중 수신료 통합징수 방식을 법으로 보장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은 총 투표수 299표 중 찬성 212표, 반대 81표, 기권 4표, 무효 2표로 가결됐다. 헌법상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법안이 다시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회 재적 의원은 300명으로 200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했다. 108석을 점하고 있는 국민의힘에서 약 20표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12월26일 수신료 통합징수법은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통과됐으나 올해 1월21일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무회의에서 해당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를 행사해 국회 재의결 대상이 됐다.
2023년 7월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실 권고 한 달 만에 방송법 시행령을 고쳐 KBS와 EBS의 공적 재원인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다.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2항 ‘지정받은 자(한전)가 수신료 징수 시 고지행위와 결합해 행할 수 있다’를 ‘행해서는 아니 된다’로 고친 것이다. KBS는 시행령 개정 1년 만인 지난해 7월1일부터 수신료 분리 고지·징수를 시행했다. 시행령 개정 당시 분리징수를 시행할 경우 납부 회피 등으로 순수입이 급감할 거라는 우려가 나왔는데, 실제로 KBS의 지난해 수신료 수입은 전년 대비 약 335억원 줄어들었고, 징수비용은 오히려 전년 대비 203억원 증가했다.
이번 수신료 통합징수법 본회의 재표결은 KBS 구성원이 건 마지막 희망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재의결 직후 성명을 내어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귀결”이라며 “KBS 구성원을 대표해 수신료 통합징수법을 발의한 김현 의원과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을 해준 212명의 국회의원들에게 감사를 보낸다”고 밝혔다.
KBS본부는 “돌아보면 지난한 투쟁이었다”며 “정권은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며 공적재원인 수신료를 흔들었고,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의도 아래 내리꽂힌 리더십들은 수신료 제도 정상화에 눈을 감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신료 통합징수법 통과는 공영방송 정상화의 시작”이라며 “오늘의 성취를 바탕으로 KBS는 새로운 KBS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KBS 사측도 곧바로 입장문을 내어 수신료 통합징수법 통과에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압도적인 지지로 방송법을 개정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개정안 통과는 KBS뿐 아니라 대한민국 방송산업 생태계 전반의 재정과 제도적 안정을 확보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KBS는 이번 방송법 개정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공영방송 본연의 사명을 더욱 충실히 이행해 나가겠다. 진영 논리를 넘어 국민의 삶을 최우선에 두고,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이날 본회의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정부의 수신료 통합징수법 거부권 행사 사유에 대해 “수신료 납부 의무가 없는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수신료 결합징수로 원복할 경우 수신료 납부 의무가 없는 국민이 수신료가 전기요금과 함께 납부됨을 알지 못해 과오납 상황이 다시 발생해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 함께 상정된 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은 총 투표 수 299표 중 찬성 192표, 반대 104표, 무효 3표로 부결돼 폐기됐다. 최소 상임위원 3인은 돼야 회의를 열 수 있도록 규정한 방통위법 개정안에 대해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18일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이진숙 위원장은 국회 본회의에서 방통위법 개정안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의사정족수를 3인으로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방통위의 상시적 행정 수행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