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개월여간 의제는 탄핵과 내란 종식에 수렴되었고, 이 과정에서 언론이 제대로 된 책임을 못하고 있다는 질타가 연일 이어졌다. 여전히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양측의 주장을 객관성의 외피를 입고 전달하기만 했고, 무엇이 정의인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산적 논의의 장을 만들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 이후로는 대선 관련 보도가 주요 뉴스가 되다 보니 정치가 시민의 일상 속에서 실천되는 것이 아닌 정치인들의 입말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도 생기고 있다. 사실 지금이야말로 언제나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정치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렇기에 시민을 중심으로 무엇을 위해 어떤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 논의해야 하는 때임에도 말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탄핵 이후의 사회 변화에 대한 시민의 목소리들이 그간 폭발적으로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수렴되고 격렬하게 논쟁 되면서 더 깊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장에서 언급된 의제들은 노동권, 기후위기 대응, 성평등, 포괄적 차별금지법, 지역 소멸에 대한 대응, 과거사 정의의 실현, 돌봄 정의의 회복 등 다양했다. ‘사회대개혁’이라는 목표가 제시되었던 것은 대의 민주주의가 그저 정치인 한 사람을 내세우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민의 민의가 대리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회대개혁 11개 분야, 118개의 과제와 424개 세부 과제, 1개의 특별과제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을 통해 제시되었다고 한다면, 이 과제들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어야 할 것인가. 언론은 탄핵 이후의 이 시간에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의제화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소수자의 목소리가 전면화되어야 할 시점이기에 현재 다수 언론 보도가 광장의 목소리들을 더 확장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물론 내란죄 재판을 비롯하여 아직도 사실상의 내란 종식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이 지점에 대한 감시의 시선을 놓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현재의 보도가 실제 내란죄와 관련된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가 살펴보면 이 역시 대결 구도 속에서 조회수 양산을 위한 자극적 내용의 전달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란 중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있는 인종화 된 타국민에 대한 혐오에 대응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런 부분을 찬찬히 다루는 보도 역시 적다.
언론에서도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의 미디어 환경에서 극우 담론이 우세해지고 있는 데에는 팩트체크를 비롯한 다른 의견에의 접속을 거부하거나 사실과 다른 의견을 오히려 자신의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데 활용해 버리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다양한 의견에 접촉하게 만들어주면 합리적인 판단과 토론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공론장 모델이 힘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양자 대결 구도에 충실한 정보들을 주로 제공하면서 충성도 높은 수용자층을 만들어내는 것이 언론의 수익을 위해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에 집중하면서 대선 구도에 혼란을 야기할 것 같은 다양한 소수자 의제를 전달할 경우 오히려 독자층으로부터 의심받지 않을지 하는 우려 역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고 이를 경청하고 논의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던 지난 4개월의 시간을 탄핵 선고라는 사건으로 종결되었다고 묻어 버릴 수는 없다. 응원봉을 들었던 여성 청년들은 성평등한 사회를 요구하고 노동 현장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실현이 지금 여기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 해결 방안을 둘러싼 논쟁 역시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시민들이 여러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의제들을 여러 언론이 나서 다양한 관점으로 깊이 있게 다루어보아야 할 시점이다. 정치와 일상이 이렇게 밀접하다는 것을 온 국민이 실감한 지난 4개월여간의 경험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언론이 일상과 정치, 그리고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연결고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