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이렇게 많이 불어서 오늘 조업 나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앞바다에서 잡은 고기라 영 물러 보이네요. 그래도 어제 물량이 없어서 오늘 어가는 괜찮게 받겠는데요.”
수산물 경매가 시작되기 2시간 전인 새벽 4시. 장화를 신고, 두꺼운 외투를 단단히 껴입는다. 뉴스 모니터링 대신, 입항 일정과 조업 정보가 올라오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살핀다. 비가 오면 조업 걱정이 앞선다. 선사 사람들과 함께 불을 쬐며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고, 오늘은 어떤 생선이 가격을 잘 받을지 이야기를 나눈다. 마트에서 고등어를 살 땐 노르웨이산인지 국내산인지 포장을 보지 않고 단번에 원산지를 알아낸다. 그렇게 수산인과 기자 그 사이, 어디에서 6개월간 살았다. “기자 아가씨, 이제 고기(생선) 장사해도 되겠다”라는 중매인의 너스레가 단독기사보다 더 뿌듯한 요즘이다.
부산일보는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의 새벽 취재와 촬영을 통해 부산공동어시장(이하 어시장)의 모습을 담은 ‘피시랩소디(Fish Rhapsody)-바다와 식탁사이’ 콘텐츠를 영상과 지면으로 내놓고 있다. 전국 최대 산지위판장인 부산공동어시장은 60년 역사를 뒤로하고 올해 말 현대화를 앞두고 있다. 어시장은 수산업의 핵심 장소이자 부산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어시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아는 이는 잘 없다. 피시랩소디는 그 어디서도 공개된 적 없는 어시장의 숨겨진 규칙과 사람들의 노하우를 담아냈다.
◇신기하거나 더럽거나
어시장 사람들을 다룬 콘텐츠가 없었던 건 아니다. “어이~ 양만 2000원야~ 양만 3000원~. 62번, 80번, 2번. 세 명 옆 칸까지 쫙!” 어시장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나오는 경매 장면 영상이다. 알아듣기 어려운 외계어 같은 소리로 가격을 읊는 경매사의 모습을 비춘다. 그 소리가 무슨 말인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스크롤을 내리니 댓글창엔 ‘더러운 바닥에서 위판되는 더러운 생선’과 같은 글들이 보인다.
그동안 어시장은 ‘신기하거나’, ‘더럽거나’ 이 두 가지 모습으로만 그려졌다. ‘유통 전문가’로서의 조명은 없다. 현대화로 지금의 어시장이 사라지면 이들의 노하우와 숨겨진 규칙을 기록할 기회는 잃게 된다. 피시랩소디는 여기서 출발했다.
◇매뉴얼이 없지 노하우가 없냐
잡아온 생선을 육지에 내리는 일부터 엄청난 노하우가 필요하다. 어창에서 400kg에 달하는 뜰채에 담긴 생선을 선원들이 수작업으로 내린다. 무게중심을 잃고 뜰채를 놓치면 곧 수억원의 손실로 이어진다. 생선은 중매인들이 사기 좋게 어종과 크기별로 ‘야간부녀반’이라 불리는 인력이 분류한다. 특히 어시장에서 주로 위판되는 고등어 크기는 1~8단계로 분류되는데, 부녀반은 아가미를 잡은 지 1초도 안 돼 크기를 단번에 잡아낸다.
비위생의 대명사가 돼 버린 ‘목재 어상자’도 사실은 수분을 쉽게 배출하고 이물질이 잘 붙지 않아 깨끗하게 관리가 가능하다. 비위생이라는 오명에도 어시장 사람들이 60년 간 사용한 이유다.
경매사들은 생선의 상태뿐 아니라 고기를 분류하는 인력의 성향, 그날 참여한 중매인의 판로 등 수십 가지 변수를 고려해 어가를 짚어낸다. 단순히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낙찰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필요한 수량, 생선의 상태를 고려해 심리싸움으로 좋은 고기를 싸게 사는 중매인들의 노하우는 알려진 적이 없다. 하루 이틀 배워선 할 수 없는,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지만 이에 대한 조명은 전무했다.
‘이들의 프로페셔널을 어떻게 독자들이 느낄 수 있게 할까’ 고민해야 했다. 모든 인물에게 1인칭 ‘바디캠’을 달기로 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직접 그 사람이 되어 노하우를 체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바디캠 영상에는 생생한 작업현장 위로 이들의 숨소리가 겹쳐진다. 짠내와 땀내가 모니터를 뚫고 독자들에게 가닿길 바랐다. 모든 경매 현장에 상황과 맥락을 해석한 자막도 입혔다.
◇변하는 눈빛들
어시장 취재에서 가장 힘든 점은 ‘시간이 곧 돈’인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앉히는 일이었다. 또한 비위생적이고 비전문적인 일을 한다는 세간의 시선도 어시장 사람들은 부담스러워 했다. 게다가 젊은 ‘여성’인 기자는 특히 남성들이 가득한 어시장에 눈에 띄는 존재였다. 어시장에 녹아들고자 ‘박카스’와 ‘잔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기자와 마주 앉은 이들의 눈은 피곤함과 어색함이 공존한다. 하지만 인터뷰의 막바지에는 새벽을 열어왔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바뀌어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꼬 인터뷰하자고 하노’라며 거절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피시랩소디는 어시장에 대한 기록을 넘어 부산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가 담은 영상은 인력 고령화와 현대화로 머지않아 영영 사라질 모습들이다. 피시랩소디는 전국 식탁을 책임져 온 이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당신 식탁 위 생선 한 마리가 수십 년의 노하우로 육지로 올라오고, 분류되고, 가격이 매겨져 왔다는 사실. 바다와 식탁 사이에 이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