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의 노골적 언론 탄압 점철된 2023년

올해 미디어 관련 이슈들 짚어보니

해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해가 있었을까. 올해 ‘미디어 10대 뉴스’는 유독 선정 과정이 까다로웠다. 주요 뉴스로 꼽을 만한 사건이 많아 무엇을 10대 뉴스로 넣을지 기자들마다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10대 뉴스는 기자협회보 기자들이 추천하고 편집위원들이 투표해 선정하는데, 목록이 엇비슷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추천 뉴스가 상당 부분 상이했다. 10대 뉴스를 선정한 후에도 각 사건의 중요도와 파급력이 워낙 커 우열을 가리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올해 10대 뉴스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정치권력의 노골적인 언론탄압’이 될 것이다. 선정한 10개 뉴스 중 7개가 이 주제에 속했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관련 사건도 많았다. 시작은 방송통신위원회였다. 지난해 자진 사퇴 종용에도 자리를 지킨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지난 5월 검찰 기소만으로 면직이 된 데 이어 8월엔 회계감사를 핑계로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임기 1년여를 남기고 해촉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와 방심위는 각각 여권 우위 구도로 재편되며 정권에 유리한 방식의 심의·의결을 하기 시작했다.


하반기부터 시작된 KBS 이사회 및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야권 이사들의 해임 시도는 그 대표적인 예였다. 방통위는 2개월여의 기간 동안 5명의 공영방송 이사를 해임했고, 이 과정에서 KBS의 경우 6대5 여권 우위 구도의 이사회가 완성되며 김의철 KBS 사장이 해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방통위와 방심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합심해 정권에 불리한 기사를 ‘가짜뉴스’로 낙인찍고 규제하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TV수신료 분리징수, YTN 지분 매각 등 공영방송의 목줄을 옥죄는 정책들도 차근차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언론계 염원이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방송3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 수순을 밟았다.


정치권력의 언론탄압은 기자들에 대한 고소·고발 및 괴롭힘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2월엔 대통령 관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역술인 ‘천공’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최초 보도한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 기자들이 대통령실로부터 고발당했고, 5월엔 MBC 기자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단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받아 ‘과잉수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하반기엔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방송 사고를 빌미로 YTN에 5억원 상당의 손해배상과 형사고소를 제기했고,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단 혐의로 뉴스타파와 JTBC, 경향신문 등 5곳의 언론사 및 기자들 주거지가 압수수색을 받는 일도 일어났다.


지역에선 더 치졸한 상황도 연출됐다. 대구MBC는 지난 5월 방송한 시사프로그램이 문제가 돼 홍준표 대구시장 측근으로부터 보도국장 등 4명이 고발당하고 홍준표 시장으로부터 취재 거부 압박을 받았다. 경찰은 6개월 후 해당 사건을 불송치했지만 취재거부는 지속됐고, 참다못한 대구MBC가 지난 7일 취재방해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충청북도에선 김영환 도지사의 지인이 충북MBC 기자 및 도의원 등을 상대로 폭행 등을 사주했단 의혹이 제기됐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테러 사주나 모의는 확대해석일 수 있지만 보도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치권력의 입김은 올해 포털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공동 설립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지난 5월 일방적으로 활동 중단을 통보했다.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진 않았지만 당시 윤석열 정부가 ‘제평위 법정기구화’를 국정과제로 삼고, 연일 포털 때리기를 이어가고 있던 터라 정치권의 압박이 제평위 중단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이후 입점·제재 심사가 멈추며 혼란이 가중되고, 네이버의 경우 SNU팩트체크센터 지원 중단, 카카오의 경우 검색 기본 값 일방 변경 등 논란이 지속되면서 양대 포털 역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편 2023년은 언론사 차원에서도 여러 내홍이 있는 한해였다. JTBC의 대규모 희망퇴직은 말할 것도 없고 연합뉴스 역시 주요 보직부장의 사내 성희롱 사건, 을지학원의 연합뉴스TV 최대주주 변경 승인 신청 등 온갖 사태가 겹치며 내부 갈등이 극에 달했다. 올 초 일어난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 한국일보 기자의 ‘김만배 금전거래 사태’도 언론계에 큰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언론사는 아니지만 평소 조용했던 한국언론진흥재단마저 올해는 여러 구설수에 오르며 상당한 내홍을 겪었다. ‘일장기 오보’를 이유로 KBS 기자의 해외 연수가 돌연 취소되는가 하면 이사들이 직원을 수사의뢰하고, 이사장 해임을 추진하는 등 상식 밖의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그렇다면 다가올 2024년은 어떨까. 역시나 올해 못지않은 격변이 예상된다. 정치권력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변경하고 돈줄을 죄는 데 이미 도가 텄다. 언론사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에 압박을 가하고 기자 개인에 고소·고발을 가하는 형국 또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방위적으로 심화할 정치권력의 언론탄압, 그러나 언론계가 힘을 모아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함께 싸운다면 부끄러움을 모를 권력의 폭주에도 언젠가 제동이 걸릴 것이다. 2024년엔 기자들의 연대가 더욱 강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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