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절망퇴직'이 남긴 것

[컴퓨터를 켜며] 강아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차장대우

이달 초였다. 여느 때와 같이 쌓여있는 메일을 확인하고 있는데, ‘기자님께’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이렇게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메일은 두 종류로 나뉜다. 밑도 끝도 없이 욕설로 도배됐거나 제보거나. 잠시 숨을 고른 뒤 메일을 클릭했다. 우려와 달리 메일 내용은 후자에 가까웠다.


발신자는 JTBC 전 직원이었다. 11월30일자로 희망퇴직을 한 그는 어느 날 아무 준비 없이 회사를 나가게 돼 억울한 마음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변호사나 노무사를 만나 수차례 상담한 결과 회사에 미래나 비전이 없고 총선 전후 2차 구조조정이 있을 거란 소문도 있고 해 퇴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당장 회사가 망하진 않겠지만 얼마나 갈까 생각하니 마침표 찍자로 이어진 거죠.” 그는 본인이 이런 글을 쓸 줄 몰랐다며, 마음이 정리되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비단 이 사람뿐만이 아닐 것이다. JTBC가 강압적 방식의 희망퇴직을 진행해 80여명의 구성원을 내보낸 이후, 조직 내부엔 깊은 상처와 좌절감이 자리 잡았다. 떠난 사람은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충격을, 남은 사람은 동료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자신도 언제고 떠나야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게 됐다. 지난 2016년, 태블릿PC 보도로 정점을 찍었던 때와 비교하며 어떡하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는 직원들도 다수다.


눈에 보이는 상황도 좋지 않다. 인력 몇 십명 내보냈다고 하루아침에 경영 상황이 나아질 리 없는데, 마땅한 경영혁신 방안이 나오질 않고 있다. 경영진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등 인사 쇄신이 이뤄진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엔 추가 구조조정이 있을 거란 소문만 무성하다.


기자들의 불안은 특히 크다. JTBC는 대규모 희망퇴직 직후 조직개편을 진행해 보도부문 명칭을 뉴스콘텐트부문으로 바꾸고 산하에 5개의 모바일팀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론 혼란스러운 상황만 가중하는 꼴이 됐다. 기존 인력으로도 충분한 모험인데, 올해 보도부문에서만 18명의 인력이 감소한 상황에서 모바일팀으로 또 인력이 빠지게 됐다. 과연 ‘뉴스룸’을 제대로 만들 수나 있을지, 보도의 질이 수직하락하진 않을지 구성원들 고민이 깊다.


JTBC 희망퇴직은 언론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요즘은 업종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많은 기업들이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시대라지만, 언론사가 권고사직을 전제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한 사례는 그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JTBC가 물꼬를 틂으로써 다른 언론사에 참고 사례가 됐다. OTT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특히나 고난을 겪고 있는 방송사들은 이번 희망퇴직을 눈여겨보고 있다. 결은 다르지만 이미 TBS와 KBS도 희망퇴직과 특별명예퇴직을 시행하고 있거나 예정이다.

강아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차장대우.


신문사 역시 남의 일이 아니다. ‘불황형 흑자’ 구조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보장성 광고·협찬마저 사라진다면 이제 신문사가 손을 댈 곳은 인력밖에 없다. 그 방식이 희망퇴직이 될지, 정리해고가 될지, 채용 중단이 될지 지금 단계선 확신할 수 없지만 인력난은 심화하면 심화했지, 해소되진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디지털 콘텐츠 유료화를 정착시키든, 별도의 수익사업을 성공시키든 해야 한다.


과연 다가올 2024년엔 암울한 미래를 해소할 단초가 마련될 수 있을까. 부디 희망적인 사례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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