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를 불러온 무분별한 채무보증. 대기업 줄도산으로 국가 경제가 휘청이자 정부는 법으로 채무보증을 금지했습니다. 이에 대기업들은 채무보증과 같은 효과를 불러오는 ‘꼼수’ 금융상품을 찾았습니다. 바로 TRS입니다. 모회사가 직접 채무보증을 하지 않고 중간에 증권사 등을 끼워 넣어 표면적으로 합법적인 상품입니다. 하지만 부실 계열사를 위한 부당지원 용도로 쓰이면 결과적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가 됩니다.
우선 부당지원이 자명해 보이는 CJ 그룹을 첫 취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완전자본잠식으로 도산해야 할 CJ 푸드빌이 2015년 500억의 자금을 지원받고 시장에서 살아남아 경쟁사의 진입을 막고 있었던 겁니다. 이때 CJ가 체결한 게 TRS로, 부실 계열사였던 CJ건설과 시뮬라인도 같은 방식으로 숨통을 이어줬습니다.
그런데 공정위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금감원이 2018년 CJ 등 9개 대기업의 TRS 부당지원 의심 사례를 공정위에 통보한 겁니다. 그럼에도 5년 동안 공정위 조사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방송 이후 공정위는 기존의 태도와는 다르게 현장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보도 11일 만이었습니다. 공정위의 ‘직무유기’가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KBS 보도가 없었다면 자칫 7년이라는 처분시효를 넘겨, CJ 등의 부당지원 의심 행위가 별다른 조사 없이 역사 속에 묻힐 뻔했습니다. 방송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신 부장과 팀장께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TRS를 함께 공부하며 더 좋은 기사를 위해 고민해주신 하누리 캡과 계현우 바이스, 함께 취재한 윤아림 기자에게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