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에 긴급심의 내건 방통위·방심위, 검열기관 되나

[방통위 '가짜뉴스 근절 추진안' 논란]
방심위에 신고 창구 설치, 포털엔 선제 조치 요청

긴급심의로 정부비판 신속차단? 방통위·방심위 '가짜뉴스 대응' 초법 발상
두 기관 모두 與성향 우세, 정부여당서 가짜뉴스 주장땐 심의대상 될 수도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짜뉴스 근절 입법청원 긴급공청회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조수진 국미의힘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손짓을 하고 있다. /뉴시스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 허위 논란을 구실로 지난 6일 ‘가짜뉴스 근절 TF’를 가동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열흘여만인 18일 “총력 대응” 방안을 내놓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가짜뉴스 신고 창구를 마련해 긴급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포털 사업자에 ‘선제적 조치’를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대책은 방심위가 허위정보를 이유로 사실상 인터넷에 유통되는 모든 언론 보도까지 심의하겠다는 것으로 “위헌적인 검열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포털 사업자에게 선제적 조치를 요청한다는 내용도 있어 방심위가 언론 보도를 ‘중대한 공익 침해’ 등으로 규정하면 포털에서 삭제 또는 차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방통위는 이날 ‘가짜뉴스 근절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패스트트랙”이란 단어를 꺼내 들었다. 가짜뉴스에 대한 신속심의를 통해 신속히 피해구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간기구인 방심위를 전면에 내세웠다. 방심위에 가짜뉴스 신고 창구를 마련해 “접수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신속심의와 후속 구제조치를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방안(패스트트랙)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방심위도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주 1회에서 주 2회로 확대하는 등 ‘가짜뉴스 대응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21일 구체적인 심의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① 가짜뉴스 ‘의심’ 신고땐 포털선 ‘심의 중’ 가능

이날 발표된 방안의 기조는 ‘선 대응 후 제도 개선’으로 요약된다. 법제도 개선엔 시일이 걸리므로 “현재 가능한 대응 시스템과 기능을 재정비하여 가짜뉴스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방안부터 본격 추진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일단 강행한다는 것이어서 “초법적”이고 “위헌적”이란 지적(언론개혁시민연대)이 나온다.


‘가짜뉴스’의 기준부터가 모호하다는 건 방통위도 인정한다. 이날 브리핑에서 배중섭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 직무대리는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나 판결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면서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방심위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가짜뉴스 여부에 관한 판단 자체를 방심위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여권 성향이 우세한 방심위 구조를 고려할 때 일단 정부여당이 가짜뉴스라 주장하면 신속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② 재허가·재승인 기간 현행 최단 3년보다 축소

더 큰 문제는 방송 보도는 물론 인터넷 보도까지 심의 영역을 확대한다는 점이다. 배중섭 직무대리는 ‘통합 심의’ 방침을 설명하며 “방심위에서도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와 별개로 인터넷 보도와 관련한 내용을 심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심위의 직무는 크게 방송심의와 통신심의로 나뉘는데 통신 쪽에선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에 따른 불법정보 및 청소년 유해정보를 주로 심의한다. 인터넷 보도는 통신심의 대상이 아니다. 방심위 역시 민원신청과 관련해 “인터넷 기사의 심의 등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직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 언론 관련 법 중에 보도내용의 허위를 다루는 건 방송의 ‘객관성’ 심의 외엔 없다. 방송 외의 언론 보도에 대한 심의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언중위의 근거 법률인 언론중재법도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 사안에 한정된다. 이 언론중재법을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당이 ‘언론의 허위·조작정보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골자로 개정을 추진했을 때 ‘언론재갈법’이라며 반대했던 게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총선이 약 반년 앞으로 다가오자 비슷한 취지의 내용을 ‘가짜뉴스 근절’ 대책으로 내놓는가 하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과 함께 가짜뉴스 생산자가 폐업 등을 한 뒤 다른 매체에서 활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이른바 ‘갈아타기 방지법’을 추진한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나아가 방통위는 포털 사업자까지 끌어들였다. “가짜뉴스 신고 접수 및 신속심의 상황을 주요 포털 사업자와 공유해 필요시 사업자의 선제적 조치를 요청”한다는 게 방통위 계획이다. 가짜뉴스로 ‘의심’된다는 신고가 이뤄지면 포털 등에서 임시차단 등의 ‘선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셈이다. 심의 대상인 보도에는 ‘심의 중’임을 알리는 표식이 뜨게 된다. 방통위는 이를 “자율규제”라 표현했는데, 이 역시 민주당이 추진했고 국민의힘이 반대했던 인터넷 뉴스에 대한 열람차단청구권 도입을 사실상 시사하는 것이어서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방통위는 긴급 재난 등의 상황만이 아닌 “선거 결과에 영향, 중대한 공익 침해”도 선제적 조치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혀 정부 비판 보도나 향후 총선 국면에서 정치권 특히 여당 관련 의혹 제기 보도가 위축될 수 있다.

③ 가짜뉴스 생산자, 폐업후 다른매체 활동 금지

방통위는 또한 개별 보도에 대한 심의 및 제재를 넘어 방송사업자의 재허가·재승인 심사 시 “긴급하고 심각한 위반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유효기간을 현행 최단 3년보다 축소하는 등” 실효적인 제재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방통위는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를 인용 보도한 KBS, MBC, JTBC를 대상으로 팩트체크 검증 시스템을 실태점검하고 위반사항 확인 시 시정명령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가짜뉴스’를 잡겠다는 정치적 집착이 위헌적인 검열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연대는 2010년 전기통신기본법의 ‘허위사실유포죄’에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이른바 ‘미네르바 판결’을 언급하며 “허위라는 그 자체만으로 표현물을 삭제·차단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네르바를 처벌했던 MB시대 인물이 돌아와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조승래 의원도 19일 ‘윤석열 정권은 선택적 가짜뉴스 언론 겁박 중단하라’는 성명을 내고 “가짜뉴스 근절에 진심이라면 입법 논의로 실질적인 결론을 내리면 된다”며 “방통위원장 이동관씨는 본인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을 되새기며 자중할 것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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