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 집도… 들춰보니 리베이트 정황까지

[지역 속으로] 강예슬 KBS부산 기자 '영업사원은 수술중' 취재기

지난 7월, 한 제보자가 기자를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부산의 한 유명 관절, 척추병원 관계자라고 소개한 제보자. 병원의 비밀을 털어놨습니다. 수술실에서 의사 대신 이 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는 ‘영업사원’이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을 환자들을 보며, 죄책감에 수술 장면을 몰래 촬영했다는 제보자. 그가 꼬박 한 달 동안 촬영한 수술 영상에는 영업사원이 수십 차례 수술을 집도하는 모습이 생생히 담겨있었습니다.

KBS부산이 7월29일 첫 보도한 ‘영업사원은 수술중’ 관련 보도에서 의료기기를 납품하는 영업사원이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장면.


◇은밀한 관행 ‘대리 수술’
‘조작 아니야?’ 이토록 생생한 대리 수술 영상은 본 적이 없었던 취재진은 제보자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보자의 말을 토대로 수술 장면 속 사람들의 얼굴을 익히고, 신원을 검증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해당 병원을 드나들면서 영상 속 인물이 실제 병원 관계자가 맞는지도 확인했습니다. 영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영업사원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도 대리 수술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려 영상 속 의료행위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석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자문단 섭외에 난항을 겪었습니다. 의사들 대부분이 비공식적으로 개인 의견을 말할 수는 있지만 공식적인 자문이나 인터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동종업계인 다른 의사를 공식적으로 비판하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제보자는 많은 병원이 대리 수술을 ‘관행’처럼 하고 있기에 쉽게 자문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100여명에 가까운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어렵게 정형외과 전문의, 재활의학과 전문의, 의사 출신 변호사, 의료 전문 변호사와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10여명의 전문가 검증단을 꾸려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자문단은 모두 해당 영상의 행위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고 말했습니다. 관절을 깎거나, 혈관 조직을 떼어 내는 등 고도의 의료행위까지 영업사원이 하고 있어 환자의 상태도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자문했습니다.

“집도의를 제외한 인원들은 진료 보조행위만을 하고 있어 의료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해당 병원 의사의 입장문.


◇“대리 수술 아닌 수술 보조 행위”
검증이 끝난 후에 해당 병원의 의사들을 찾았습니다. 의사들은 대리 수술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수술실에 영업사원을 들인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술 영상을 보여주자 이 병원 수술실 장면이 아니며, 설령 영상이 맞더라도 ‘수술 보조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는 자문단 의견을 전하자 일부 전문가 주장일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이 자문단을 잘못 꾸렸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KBS는 7월29일 첫 리포트 보도를 방영함과 동시에 해당 병원의 대리 수술 행위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부산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 수술 영상과 자문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경찰 수사 시작. ‘리베이트’ 정황도 확인
보도 후, 부산시와 관할 보건소가 해당 병원을 상대로 진상 조사에 나섰습니다. 의사협회와 전공의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해당 병원을 철저히 조사하고, 대리 수술 의혹이 밝혀지면 강력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보도 후 8일 만에 경찰은 해당 병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경찰은 해당 병원의 대리 수술 정황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업체와 병원의 ‘리베이트’ 정황까지 확인하고,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수사가 시작됐지만, 공익제보자는 실의에 빠졌습니다. 병원은 직원들을 상대로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고 합니다. 아직도 영업사원은 보란 듯이 수술실을 출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관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꾸린 의사들은 절대 처벌받는 일이 없을 거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강예슬 KBS부산 기자


이렇게 의사들이 당당한 이유, 대리 수술이 적발되더라도 처벌이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무면허 의료행위 적발로 의사 자격이 취소된 사례는 단 6건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 자격정지 한 달 정도의 행정 처분에 그쳤고, 의사들은 적발 후에도 영업을 이어나갔습니다.


“이토록 생생한 증거가 있는데도, 의사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의료계는 미래가 없다.” 제보자와 자문단은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KBS는 해당 의사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는지, 처벌 후에도 다시 영업을 이어가지 않는지 끝까지 감시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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