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질곡의 세월 견뎠지만, 오늘 언론 상황은 또 다른 위기"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 성료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이 10일 전·현직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기념식은 현 시기 기자협회의 역할과 기자 업의 본질을 돌아보는 행사로서, 아울러 최근 언론 상황을 바라보는 전·현직 기자들의 인식을 살피는 자리로서 의미를 남겼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1964년 8월17일 창립 이후 정치·자본 권력에 맞서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구심체로서 기자협회 역사를 설명, “오늘 창립 59주년을 맞이했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냈지만 오늘의 언론 상황은 또 다른 위기에 놓여있다”며 “특히 최근 권력과 언론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속전속결로 처리된 방송통신위원회의 KBS 수신료 분리징수, KBS이사장과 MBC 최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해임 추진 움직임 등 현 정부여당의 언론 관련 행보를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김 회장은 “한 달여 전 기자협회가 이동관 특보의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는데 반대가 80%였고 찬성은 13%였다.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80%는 이명박 정부 때 언론장악에 앞장섰던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꼽았다”며 “이것이 기자들의 민심”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현직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 정치인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김 회장은 정치 권력의 압박에 더해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른 기자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도 “이런 어려움에도 기자들의 뼈를 깎는 성찰과 반성도 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언론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고 곱지 않다. 정파적 보도는 언론을 깊은 수렁에 빠뜨릴 것”이라며 “조급증에서 벗어나 언론의 본령을 회복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향 끝에는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양영은 KBS 기자(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식엔 다수 전·현직 기자, 언론단체 인사, 정치인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정미 정의당 대표,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박기병(10·17대 기자협회장), 이형균(11대 기자협회장 직대), 이춘발(28대 기자협회장), 김주언(32·33대 기자협회장), 남영진(제35대 기자협회장), 조성부(36대 기자협회장), 이상기(38·39대 기자협회장), 정일용(제40대 기자협회장) 등 한국기자협회 고문이 참석했다.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과 회원, 조성호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현이섭·유숙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이진순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양만희 방송기자연합회 회장, 김경희 한국여성기자협회 회장, 김창환 한국편집기자협회 회장, 이호재 한국사진기자협회 회장, 양종구 체육기자연맹 회장, 김지방 인터넷신문협회 부회장 등도 행사장을 찾았다.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현직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 정치인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 오지 못한 김진표 국회의장은 영상 축사를 통해 “한국기자협회의 역사는 그 자체가 한국 언론자유 수호의 역사였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을 맞아 언론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챗GPT의 등장, 가짜뉴스 범람과 같은 새 이슈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사실을 직시하는 언론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시 한 번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 개최를 축하드리며 시대를 기록하는 역사의 증인인 기자 여러분을 응원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대학 시절 학보사 경험을 말하며 “제가 언론에 먹잇감이 된 적도 굉장히 많다. 지금은 (포털에서) ‘실검’(실시간 검색어)이 없어졌지만 다음에서 검색어 1위를 53일 연속 1등을 하면서 언론에도 많이 오르내리고 나름의 고통도 컸지만 횡포는 횡포대로 우리가 물리쳐야 할 부분이고 언론의 자유는 자유대로 신장해야 될, 우리의 막중한 임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서 “참석하신, 또 참석 못하신 언론인 여러분들의 분투를 응원한다”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현직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 정치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사진은 축사를 하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축하와 더불어 현 정부여당의 언론 관련 행보에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과거) 언론인들이 열망했던 민주화는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또 넘어야 할 커다란 장애물 앞에 서 있다”며 “미디어환경 변화를 틈타 가짜뉴스들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언론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교묘히 활용해서 통제를 강화하려는 권위주의 정권이 바로 그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위기가 옛 위기와 함께 다가왔다. 언론 앞에서 평가받고 감시받아야 할 권력은 자신들의 이념에 맞춰서 언론을 재단하고, 민영화, 수신료 분리징수 등 자본의 그물로 언론을 얽어매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가짜뉴스에 가장 단호히 맞서야 할 권력이 오히려 그 가짜뉴스에 출연해서 기성방송을 믿지 말라는 망언을 쏟아낸다. 현 정권 들어서 언론자유 지수가 4단계가 하락한 것도 이런 사태들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위기가 찾아온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해결책은 더 많은 언론자유, 더 많은 민주주의다. 59년간 지켜온 한국기자협회의 정신이 이어지는 한 권위주의와 언론탄압은 자유를 이길 수 없으며 말초적인 가짜뉴스도 정론직필을 덮을 순 없을 것”이라며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지키는 언론자유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언론인 여러분들과 굳게 손잡고 싸워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현직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 정치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사진은 축사를 하는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축하 메시지와 별개로 언론과 기자의 기본 역할과 태도에 대해 축사 상당 분량을 할애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남영동 등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여러 언론인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표 이사장은 “새삼스럽게 옛날 이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사실, 즉 팩트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예를 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기자들이 고문과 구타를 당할 때 바깥에선 경찰 간부 등이 은밀하게 출입기자를 불러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퍼뜨린 사례를 들며 표 이사장은 “이게 바로 관제 유언비어의 탄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제 유언비어는 시대에 따라 양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팩트가 아니란 점이 그 본질”이라며 “추적과 취재를 해서 사실과 진실을 밝혀내는 게 기자 업의 본질이 아닌가. 관제 유언비어는 그 뒤에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었을까. 아니면 다른 모습을 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 똬리를 틀고 있을까. 선·후배 동료들에게 이 의문 하나를 남기려 한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선 한국기자협회 창립 당시 채택한 선언문이 낭독되기도 했다. 최대열 아시아경제 기자와 권예진 BBS 기자는 “정의와 책임에 바탕을 둔 우리들의 단결된 힘은 어떠한 권력, 어떠한 위력에도 굴치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며 “일선 기자들은 오늘 한국기자협회를 창립한다”는 선언문을 낭독, 초심을 되새기는 의미를 더했다. 행사 말미엔 ‘기자의 세상보기’ 우수상 시상식이 개최되며 이연우 경기일보 기자, 송석주 이투데이 기자, 최하운 KBS 기자에게 꽃다발과 상패, 축하박수 등이 돌아갔다.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현직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 정치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사진은 기자협회 창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최대열 아시아경제 기자와 권예진 BBS 기자의 모습.


야권 정치인들, 尹 정부 언론행보 비판

‘언론장악’으로 비춰지는 정부여당의 여러 움직임이 최근 진행 중인 상황에서 열린 이날 기념식에선 이 같은 행보에 대한 야권 정치인들의 우려와 비판이 나왔다. 이날 자리를 찾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대독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축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해당 글을 통해 1960~1980년대 언론자유 수호, 민주화운동을 언급, “그 중심엔 언론이 있었고,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헌법 21조에 보장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투쟁과 희생으로 얻어낸 고귀한 산물”이라며 “윤석열 정부 들어 힘겹게 쌓아올린 언론자유가 무참히 훼손되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현직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 정치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사진은 축하 메시지와 더불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글을 대독하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특정 언론사 전용기 탑승 배제, 각종 수색과 감사 시도를 사례로 들며 그는 “국정원까지 동원했던 언론탄압 기술자로 알려진 그 분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온다고 한다. 공영방송 장악과 언론자유 침탈을 본격화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와 보도의 중립성이 흔들리면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며 “언론자유 수호와 공정 보도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수많은 언론탄압의 시도들은 역사 속에서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언론으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는 언론인으로 국민 곁에 그리고 진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민주당도 언론탄압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부연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이날 축사에서 “(과거) 언론인들이 열망했던 민주화는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또 넘어야 할 커다란 장애물 앞에 서 있다”며 “미디어환경 변화를 틈타 가짜뉴스들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언론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교묘히 활용해서 통제를 강화하려는 권위주의 정권이 바로 그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념식은 당초 참여가 예정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등이 태풍 대비를 이유로 갑작스레 불참함에 따라 야권 정치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기자의 세상보기' 우수상 시상식과 마음에 남은 소감들

행사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2023 기자의 세상보기’ 우수상 시상식에선 현장에서 활발히 뛰고 있는 기자들이 마음에 남는 수상소감을 남기며 화룡점정이 됐다. ‘세상보기’는 최일선 취재현장에서 뛰고 있는 기자들의 취재기, 취재후기를 엄격히 선정해 단행본으로 묶어 기자협회가 매년 내고 있는 책이다.

지난 2월 ‘튀르키에 대지진’ 현장을 다녀와 취재기를 남긴 최하운 KBS 기자는 “억류가 되기도 하고 ENG 촬영 카메라가 파손되는 일 등을 겪고 적었는데 날 것의 글을 좋게 읽어주신 것 같다”면서 “이전까진 재난 기사를 읽어도 사실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옆집에 무슨 일이 나도 당장 내 집안에 벌어진 일이 아니면 관심이 무뎌지기 마련이다. 제가 기자로 일하는 목적이 두 발로 뛰고 두 눈으로 보고 이런 것들을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함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튀르키예어 “Geçmiş Olsun!”을 외치며 “‘다 잘 될 거야’란 뜻인데, 지금 사실 기자들이 많이 힘들지 않나. 다 잘 될 거란 믿음을 갖고 이 자리에서 외치고 싶다”고 했다.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념식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현직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 정치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사진은 이날 진행된 '기자의 세상보기' 우수상 시상식. 포즈를 취한 (왼쪽부터)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이연우 경기일보 기자, 송석주 이투데이 기자, 최하운 KBS 기자의 모습.

이연우 경기일보 기자는 7~8년 전 자신의 수습시절을 돌아보며 지역기자로서, 그 중 신입기자로서 고충을 다룬 글로 수상을 했다. 이 기자는 글 소개와 소감을 밝히며 “많이 변한 부분도 있고 그대로 유지되는 부분도 있을 텐데 특히 지역지에서 근무하는 기자분들이 후배들은 선배를 보고 많이 배우고, 선배들은 후배들이 어떤 기사를 쓰고 싶어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번쯤 살펴봐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부했다.

자신의 특이한 이력을 살린 진솔한 글로 수상한 송석주 이투데이 기자는 “기자를 하기 전 영화평론 일을 했었는데 전업 평론가로 산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 생계를 위해 기자가 됐다. 문화부 기자로 오래 일을 하다 작년부터 법조팀에 배치돼 법원에서 기자일을 하는데 법원에서 느낀 것과 영화를 엮어 쓴 게 와닿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이날 송 기자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사회부장, 법조팀 기자 등 3명이 직접 행사를 찾아 축하 메시지를 건네며 훈훈한 모습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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