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사상 최대의 기름이 유출된 지 어느덧 16년이 흘렀다. 당시 국민 123만명이 두 팔을 걷고 자원봉사에 나서며 태안기름유출사고는 서해안의 기적이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실제 이제는 바다를 뒤덮었던 기름을 완전히 걷어냈고, 외지 관광객들은 태안의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즐기러 오고 있다.
태안기름유출사고가 이 같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는 착각에서 깨어난 것은 불과 7개월도 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허베이 유류피해기금 2024억원을 운용하고 있는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의 국응복 이사장이 충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합 해체를 주장했고, 약 한 달 뒤 조합의 기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도 나왔다. 태안기름유출사고의 결말은 눈에 보이는 기름을 닦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태안을 포함해 피해 입은 서해안이 발전의 기반을 다져야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자각한 시점이었다.
유류피해기금은 태안기름유출사고를 일으킨 삼성이 책임을 인정하고 사회복지모금회에 출연한 3067억원으로, 2018년 11월 모금회가 태안·서산·당진·서천 피해민으로 구성된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이하 조합)에 2024억원, 보령·홍성·전북 5개 시·군으로 이뤄진 서해안연합회(이하 연합회)에 1043억원씩 각각 배분했다. 유류피해기금은 피해민 및 피해지역 회복이라는 목적이 명확한 만큼, 두 단체는 모금회에 최초 제출한 총괄사업계획서의 틀 안에서 기금을 집행해야 한다. 또 사업 기간은 조합이 2028년, 연합회가 2023년으로 한정돼 있다.
즉 수천억원의 자금으로 피해지역이 회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인데, 그동안 조합과 연합회는 천금 같은 기회의 시간을 허투루 날린 것이 취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었다. 조합은 2019~2022년 4년간 전체 기금의 11%에 불과한 226억원밖에 사용하지 못했고, 연합회는 사업 기간 만료를 앞둔 올해 현재까지 1000억원이 넘는 원금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 기금은 ‘내 돈’이라는 욕심이 내부 갈등을 키우고, 동네도 작고 아무 관심도 없으니 소위 ‘우리 식’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미숙함과 안일함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두 기금사업단체를 관리·감독해야 할 해양수산부와 모금회가 이 같은 기금 사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알아도 눈감아준 행태도 피해를 키운 요인이었다.
지역지로서 취재와 보도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제는 태안기름유출사고가 온전한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란 거였다. 바다에서 기름을 걷은 데서 그치지 않고, 피해지역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시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부적절한 기금 관리를 끊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감독기관인 해수부와 모금회가 기금 사태 해결에 더욱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그동안 권한이 없다며 뒷짐을 졌던 피해지역 관할 지자체들도 이제부턴 함께 피해민 문제에 참여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을 했다. 그 결과 해수부와 모금회는 보도 시점과 맞물려 조합과 연합회의 기금 집행을 동결하는 조치를 비롯해 양 단체 현장 실사, 기금 정상화 마련을 위한 토론회 개최 등에 나섰다. 지자체의 참여도 해수부가 충남도와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어 의미 있는 진전이 있을지 주목된다.
유류피해기금을 취재할수록 확신에 든 생각은 언제까지 수천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소수 피해민만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냐는 점이다. 피해민 한 명 한 명에 기금을 나눠주지 않았고 일반 협동조합이 아닌 사회적협동조합의 형태로 기금을 운용하는 만큼 과연 이 돈이 피해민, 나아가 지역사회 전반을 위해 올바르게 쓰이고 있는지 누구나 따져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07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를 뒤덮은 기름은 이제 걷혔지만, 이를 둘러싼 지역사회의 갈등과 피해 회복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제는 검은 기름으로 얼룩졌던 바다뿐만 아니라, 피해민을 위해 온전히 쓰여야 할 기금도 투명하게 닦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