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이 광고지표를 조작해 언론사들의 정부광고 단가 순위를 의도적으로 뒤바꿨다는 한 보수매체 보도에 정부광고지표가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달 27일 보도가 나온 이후 여당이 가세하고 검찰이 움직이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3일 만에 운영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작의 당사자로 지목된 언론재단은 정부 광고단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반박 자료를 냈지만, 이 자료마저 돌연 삭제되며 재단 구성원들의 불안과 분노가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정부광고지표는 부수 조작으로 신뢰성을 잃은 한국ABC협회의 부수 공사를 대체하기 위해 지난 2021년 7월 도입됐다. 문체부는 당시 전국 5만명 대상 열독률 조사에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자료(언론중재위 직권조정 시정권고 건수, 자율심의기구 참여 여부, 편집위원회 설치 운영 여부 등)를 더해 핵심지표를 만들었고, 이를 언론재단에 맡겨 2022년부터 정부광고 집행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열독률 조사의 경우 전수 조사가 아닌 표본 조사라는 점 때문에 조사 방식과 분석 기준을 두고 언론사별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반발이 있었다. 핵심지표가 광고주에게 제시될 순 있지만 강제성이 없고, 지표별 반영 비율 역시 광고주 마음대로라 실제 행정·공공기관이 이 지표를 이용할 여지가 적다는, 실효성 논란도 제기됐다.
이는 지난해 정부광고 집행 현황에서도 증명됐는데, 정부광고료를 많이 받는 상위 매체 간 순위 변동이 2021년과 비교해 거의 없었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제공한 ‘2021~2022년 신문 매체 정부광고 집행 현황’ 자료를 보면 정부광고를 가장 많이 받은 상위 1~4위 매체(동아·중앙·조선·매일)는 순위까지 똑같았고, 1곳을 제외하곤 10위권에 든 언론사가 동일했다. 열독률로 구간을 나누든, 사회적 책무 지표로 점수를 매기든 그 결괏값이 정작 정부 광고시장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단 방증이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트루스가디언이 “언론재단이 열독률을 조작해 언론사 광고단가 순위를 뒤바꿨다”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분위기는 삽시간에 바뀌었다. 존재하지 않는 정부 광고단가 자료가 기사에 언급되고 이에 따라 일부 매체는 특혜를, 일부 매체는 불이익을 받았다는 언급이 나오면서 새 지표의 한계점은 어느새 ‘조작’과 ‘편법’으로 탈바꿈했다.
관련 성명과 고발도 잇따랐는데, 국민의힘 공정미디어위원회는 보도가 나온 날 성명을 내고 “언론재단은 지금 즉시 자체 조사를 실시하고, 어렵다면 검찰 조사나 외부감사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재단을 압박했다. 다음날엔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표완수 언론재단 이사장과 전 미디어연구센터장을 업무방해죄 및 위계공무방해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3일 해당 사건을 형사9부에 배당했다.
전례 없는 속도전과 함께 이상한 일도 일어났다. 트루스가디언 보도가 나온 다음날 언론재단이 홈페이지에 올린 보도 설명자료가 돌연 삭제된 것이다. 언론재단은 “기사에서 제시한 정부광고 단가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 지표를 40%로 강제한 사실이 없고, 정부광고지표 배점 비율은 정부광고주가 자율 설정한다”고 반박했지만 직원들도 모르는 새 게시 글이 내려갔다.
언론재단 노동조합은 이와 관련,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고 “최초 왜곡 보도 이후 잘못된 사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담당 임원은 적극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지 않는 납득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심지어 재단의 입장을 담은 설명자료가 삭제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재단의 명예가 더 이상 실추되지 않도록 사측은 단호히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언론재단 노조위원장은 “문체부 보도자료가 나가기 전, 사측이 별도로 연락이나 언질을 받은 게 없다고 하더라”며 “공공기관은 당연히 주무 부처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협의하고 승인 하에 일을 진행한다. 조합원과 직장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언론재단은 3일부터 2주간 열독률 조작 보도와 관련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언론재단은 또 문체부와 협의 후 감사원에 특별감사를 청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