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TV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5일 처리한다. 앞으로 남은 절차를 고려하면 이달 안에 개정안이 공포될 가능성이 크다. 야당 측 위원은 안팎의 우려에도 수신료 분리징수를 강행하는 정부·여당 측 방통위원들에 반발해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여당은 분리징수에 이어 KBS 2TV 폐지까지 주장하며 공영방송을 압박하고 있다.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 3일 방통위원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5일로 예정된 전체회의에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안건으로 상정했다. 야당 측 김현 위원은 개정안 상정에 반대하며 수신료를 받는 KBS와 EBS, 위탁징수자 한국전력(한전)의 대면 진술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위원의 반대에도 여야 위원 2대1 구도에서 개정안 상정이 결정됐다.
이날 김현 위원은 개정안의 내용과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김 위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방통위는 용산 비서실의 출장소가 아니다. 김효재 직무대행의 막가파식 운영을 더는 볼 수 없는 지경”이라며 “위원이 법적 근거에 따라 요구하는 자료의 보고, 법률검토, 법적 절차(이해관계자 의견진술 요구)를 다 깔아뭉개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정안은 야당 위원 1인이 반대해도 정부·여당 측 위원 2인 모두가 찬성표를 던져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의결 이후 남은 절차는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 순이다. 이르면 이달 중순 법령 공포까지 이뤄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수신료 징수 현장에선 혼선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징수를 시작한 1994년부터 KBS와 한전은 3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왔는데, 이번 계약의 유효기간은 내년 말까지다. 한전은 당장 개정안대로 분리징수를 하려면 KBS와 맺은 위탁징수 계약을 파기하거나 부담을 줄일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앞서 한전은 수신료 분리징수에 따른 비용 증가와 혼란을 막으려면 개정안의 일부 내용에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방통위에 전달했지만, 이는 반영되지 않았다.
KBS는 지난달 헌법재판소에 방통위의 시행령 개정 절차를 멈춰달라며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다. 방통위가 통상 40일 이상인 입법예고 기간을 열흘로 단축한 것에 대해서도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KBS는 향후 개정안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도 예고했다.
KBS에 이어 언론현업단체들은 시행령 개정 중단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5개 단체는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신료 분리징수는 단순한 징수 방식의 변경이 아니라 한국 미디어 시장과 콘텐츠 제작 역량에 악영향을 끼칠 돌이킬 수 없는 정책 결정 과정”이라며 “헌재가 시행령 개정 절차를 중단하는 결정을 조속히 내려주길 당부드린다”고 했다.
분리징수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여당은 KBS 2TV 채널 폐지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올해 하반기 방통위가 실시하는 KBS 재허가 심사까지 거론하며 공영방송을 압박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3일 공동성명 발표와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7년 재허가 점수 미달 시에 지적됐던 보도 공정성은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고 경영진의 방만 경영은 하나도 개선된 것이 없다”며 “국민이 외면하는 KBS 2TV를 조건부 재허가로 연명해주는 것은 수신료 낭비”라고 했다.
이튿날 KBS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주장을 비판했다. KBS는 “재허가 신청서 제출 시점(6월30일)에 맞춰 정부여당 의원들이 공영방송 채널을 폐지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방통위 재허가 업무에 대한 강력한 압력으로서 부적절한 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며 “개정안 추진과 연결돼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이른바 ‘공영방송 길들이기’를 염두에 둔 일관된 구성에 의해 진행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앞서 언론개혁시민연대도 3일 발표한 논평 에서 “분리징수만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무리수에 무리수를 두며 (개정안 처리를)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올해 말 2TV 폐지까지 가려면 지금이 아니면 안 됐던 것”이라며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건 정부의 책임이지만, 그렇다고 공영방송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은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