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제 MBN 기자가 6월23일 별세했다. 향년 만 26세. 고인의 MBN 입사 동기들이 쓴 추도사를 싣는다.
냉장고를 열다 눈에 들어온 도라지 배즙에 또 한참 널 그렸다. 천식으로 하루 쉬었던 날, 아프지 말라며 대뜸 한 상자를 집으로 보낸 너. 챙겨 먹다 그만 몇 포를 남겼는데, 그 덕에 네가 떠나고도 너를 떠올린다.
호수 같았다. 고요하게 일렁이는, 작지만 물이 깊은. 요란친 않아도 잔잔히 재밌었고, 어린애 같다가도 한없이 어른스러웠다. 수다를 떨자면 듣기만 하다가도, 뜬금없이 보도국 사람들 말투를 따라 해 동기들을 웃겼다. 뽀로로처럼 놀고 싶다면서도, 기자로서 기수 간사로서 주어진 일 매번 능숙히 해냈다.
“빈, 뭐해?”
회사 1층 카페에서 기사를 쓰고 있자면, 나풀대며 들어와 안부를 물었다. 부르는 목소리가 한없이 상냥했다. 푸념을 쏟아내면 신나게 맞장구를 쳤다. 자기 일인 양 듣기만 해도 아득하다고 말하는 너를 보면 피로가 가셨다.
수술 전 마지막 출근, 동기들과 식사 자리. 너는 밥값을 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성대모사로 배꼽을 잡게 했다. 원고는 벌써 써놓고 왔고, 보도국장과의 기수 간 식사 약속 장소와 시간을 공지했다. 일하기 싫다며 징징대다가도, 너나없이 한탄을 토해내니 우릴 위로했다. 밥 다 먹곤 여느 때처럼 프로답게 녹화를 마치기까지, 평소의 이연제였다.
그래서, 몰랐다. 연제야, 조금만 달리 굴지 그랬냐. 힘들다고, 무섭다고, 우리 동기들 눈치챌 수 있을 만큼만 어리광을 부려주지. 그럼 이렇게 준비 없이 널 보내진 않았을 텐데. 착한 너라서, 우리 힘들지 말라고 그랬던 걸 알지만 밉다.
미안해. 너는 우리한테 괜찮으냐고 묻는 게 일상이었는데. 우리는 네게 그러지 못했다.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어떠냐고 캐물었다면. 불안을 털어놓았을까. 끝까지 일을 놓지 않은 널 억지로라도 쉬게 했다면. 앞으로도 함께 밥 먹을 수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널 그리워하더라. 네가 입사자 방에서 좀 열심히 번호를 뿌렸어야지. 생면부지인 기자들도 부고에 놀라고 안타까워했다. 장례식장에서 음식을 나르자니 너의 지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따뜻했던 아이, 웃음을 주는 사람. 넌 우릴 만나기 전에도 한결같았구나.
다들 슬퍼했다. 넌 지나치게 상냥해서, 거기서도 그 모습에 마음 아파할 테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연제야. 우린 앞으로도 많이 울겠지만, 너를 후회로만 남겨두진 않을 거야.
동기들이 자주 모인다. 안부를 계속 확인하고, 서로 일을 제 것처럼 돕는다. 짬짬이 네 얘기도 나눠. 각자 너와 함께한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기억을 합치니 너는 생각보다도 더 광기가 흐르는 사람이라 다들 많이 웃었다. 네가 떠나 힘들지만, 너의 유산으로 극복해 간다.
정말로 호수였는지 넌 은은히 우릴 적셔놨다. 네 말투가 동기 모두의 입에 배어버렸다. 모여서 대화하고 있자면 이연제 11명이 말하는 듯해. 그래서 우린 평생 널 못 잊는다. 힘들고 지칠 때면 호수를 찾아 위안을 얻고 기운을 낼 거야.
보고 싶다. 이리 급히 갈 줄 몰라 제대로 된 인사를 못 해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언젠간 만날 거라 작별도 필요 없던 걸로 해. 거기선 아프지 않을 테니, 먹고픈 것 실컷 먹고, 뽀로로처럼 신나게 놀고 있어. 나도 남은 도라지 배즙 챙겨 먹으며 열심히 살다 갈게. 다시 보자. 사랑한다.
연제를 사랑하는 29기 동기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