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글로벌 팩트 10’은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탐사보도와 팩트체크 등 자신의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세계 언론인들과 대담이 주를 이뤘다. 각 국의 사정은 제각각이었지만 정치권력으로부터 탄압받고, 때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허위정보와 싸우는 저널리스트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타국 동료의 헌신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 기립박수를 치는 등 뜨거운 연대의 메시지를 표했다.
29일 오전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진행된 행사 두 번째 날 기조발표는 친러시아 인터넷 트롤들의 활동에 대한 탐사보도로 잘 알려진 핀란드 탐사저널리스트 제시카 아로 기자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허위정보 생산공장으로 알려진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를 오랜 시간 취재해 보도했고 이와 관련해 2019년엔 <푸틴의 트롤 군대>, 2022년엔 <푸틴의 트롤: 러시아의 세계 정보 전쟁의 최전선에서> 저서를 펴내기도 했던 기자다. 아로 기자는 이 같은 움직임을 “소셜미디어를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활용해 서구 민주주의로부터 러시아를 지키는 정보전, 다시 말해 국방의 목적을 지닌 전략의 일환”으로 바라보며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IRA를 직접 방문해 직원들을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던 그는 “공장 하나에서만 수백명의 사람이 일하고 있었고, 건물 하나만 얻으면 손쉽게 운영할 수 있는 여건에서 네트워크를 이뤄 활동하고 있었다”면서 “2014~2015년 당시 대사관이 트롤 허브를 운영하며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활동했고, 특정국가의 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을 채용해 해당국가를 모니터링하고 트롤 작전을 실행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선전 내러티브는 다양한 국가에서 반복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려고 한다’거나 , ‘전쟁은 유럽연합, 나토가 시작했고 미국이 배후에 있다거나’ 하는 게 대표적”이라면서 “돌아 보면 오래 전부터 은밀하게 전쟁을 빌드업하고 있었던 것”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활동으로 지속적인 협박, 국제적인 선전 및 혐오발언 캠페인의 표적이 되는 일을 겪으며 그는 고국을 2년 간 떠나있기도 했다. 아로 기자는 “핀란드어로 쓰였지만 크렘린이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사이트에 저와 관련한 허위정보가 300개 정도 있었고 조회수만 200만 가량이 됐다”면서 “저를 정신이상자로 묘사하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었는데, 저를 진심으로 공격하려는 사람도 있어서 저를 따라다니며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거나 유튜브를 하기도 해서 재판까지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계속 보도하나라는 질문에 그는 “러시아 트롤은 언론인을 공격하는 게 생계와 비즈니스다. 그들이 뭘 쓸지 말지에 대한 제 편집 관련 의사결정에 관여하게 둔다면 제 독자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이고, 제 감정 때문에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팩트체커로서 할 일은 이 작전을 밝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이 서방의 선전기구’란 음모론이 있고, 기자를 싫어하는 감정을 더욱 키우고 있지만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설명하고 의사소통해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허위정보를 비판적으로 보고 생각을 고칠 계기가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잔해 속 진실> 세션에선 전시 상황 혹은 정치권력으로부터 각종 위협과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도 용기 있게 사실규명에 힘쓰고 있는 브라질, 조지아, 필리핀, 우크라이나 팩트체킹 기관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며 빛을 더했다. 필리핀 비영리 미디어 기구인 베라 파일즈(Vera Files)의 엘렌 토르데시야스 회장은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후 “테러리스트로 몰리거나 낙인이 찍히면 영장 없이 체포돼 24일 간 구금이 되고 언론을 대상으로도 공격이 이뤄지는 우울한 상황” 속에서 이어지는 자신들의 활동을 설명했다. 매체는 ‘소총을 든 두 사람의 사진’을 받으며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고, 최근 팩트체크에 대해 대통령이 반박하며 ‘두테르테의 말은 사실이 아니고, 그는 저급한 언어를 쓰는 사람이며, 우린 저질이 되지 않겠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그는 “사무실에 사복 경찰이 찾아와서 경찰에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하도 많은 질문을 하고 문서를 요구하니 제대로 된 기관인지 확인하려고 했다’는 답을 하더라. 협박과 위협을 견뎌왔는데 스태프들을 걱정했지만 오히려 보고 많이 배운다. 공격할 근거를 안주기 위해 개인활동이나 가족 얘길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일은 하지 않고, 올려도 몇 달 뒤에 올린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팩트체크를 계속 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하는 일이 옳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30년 간 저널리스트로 여러 보도를 하며 여러 대통령을 겪었는데 사실 지금 두테르테가 하는 게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타국 언론인과의 협력이 도움이 된다면서 “IFCN 같은 국제적인 기관이 인증한 팩트체커들을 통해 더 많은 독자에 도달할 수 있단 건 두테르테도 두려워할 일”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러시아의 행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의 팩트체커들도 말을 보탰다. 집권당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도 언론활동을 이어가는 중인 조지아 매체 미스 디텍터(Myth Detector)의 타마르 킨스라슈빌리 편집장은 “현재 집권당은 민주주의를 오해하고 있고 야당과 시민사회를 위협한다. 우리 매체 역시 친러시아 매체 등을 통해 공격받는 일을 겪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팩트체크 매체 스톱페이크(Stopfake)의 루슬란 데이니첸코 최고책임자는 “지난 1년은 우리 팀에 중요한 시기였다. 러시아 미사일이 주요 도시를 폭격했고 탱크가 집에서 불과 10km 떨어진 곳까지 왔었다. 팀원 3명은 입대해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는 상황”이라고 했다.
데이니첸코 편집장은 “허위조작정보는 전쟁의 준비단계다. 침공 1년전부터 러시아TV 네트워크에서 우크라이나를 동료로 보는 시선이 사라지며 ‘전쟁이 임박했다’고 짐작했다. ‘우크라이나 테러리스트가 러시아 도시에서 활동을 준비한다'는 주장이 돌아 검증기사를 게재했는데 러시아 언론은 정정보도를 하지 않았다. 전쟁 구실을 만들려는 작전의 일부였던 것”이라며 “많은 국가와 시민들이 보여준 지원에 감사드린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거짓정보를 확인해준 팩트체커들에게도 감사하다”고 했다. 이날 세션 직전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행사장을 찾아 “허위 정보를 통해 러시아는 전쟁의 무대를 만들었다. 기만과 조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정말 중시돼야 하고, 이런 측면에서 팩트체킹은 중요한 부분이다. 언론인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여러 글로벌 플랫폼 관계자들이 참석해 플랫폼별 허위정보 대처방안, 팩트체킹 기관과의 파트너십 방향 등에 대해 세계 팩트체커들에게 설명하는 <틱톡과의 논의: 허위정보 대응 접근법>, <메타와 허위정보의 다음은 무엇일까?3PFC의 전망과 과제 검토> 대담 자리가 진행됐다. 분과회의에선 <유튜브의 허위정보 대응 및 알고리즘 분석에 대한 업데이트>도 다뤄졌다. 플랫폼과 협업, 펀딩에 팩트체커들은 큰 관심을 보였지만 그간 언론활동 가운데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개선 사항을 쏟아내고, 지원 확대 필요성을 적극 어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