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엔 있지만 우리에겐 없는 것

[글로벌 리포트 | 독일]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언론학 박사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언론학 박사

그야말로 언론 수난 시대다. 정치와 언론이 본디 뗄 수 없는 관계라곤 하지만 이렇게나 빠르게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정권의 언론에 대한 비판과 불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독일도 마찬가지이고 그 대상이 되는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편향된 판단이 담긴 콘텐츠는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 과정에 개입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검열금지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독일의 기본법으로 보장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언론 또한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독일은 기사가 발행된 후, 필요한 경우에만 제재를 가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를 뿐이다.

대다수 독일 언론들은 ‘독일언론위원회’(Presserat)라는 단체에 가입되어 있다. 1956년 설립된 독일언론위원회는 온라인출판인·신문협회, 언론인협회, 언론인유니온(노동단체), 자유언론연합 등 4개 단체가 주축이다. 언론정책에서 이해관계자로 활동할 뿐 아니라 ‘언론인신분증’을 발급하고, 회원들의 기사와 관련된 민원을 처리하는 일종의 협회이자 자율조정기구다. 독일언론위원회에 접수된 민원은 16개 조항으로 구성된 ‘보도규범’(Pressekodex)을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독립성, 정보 접근의 자유, 의견표현의 자유 보장이 기본 원칙이다.

독일언론위원회의 보도규범은 국내나 해외에서 언론학 관련 학문을 배운 사람들에겐 익숙한 내용이다. ①진실 존중, 인간 존엄성 보호, 진실한 정보의 제공, 보도 자료 이용 시 기사와 분리 ②오해 여지가 없는 글·이미지·삽화 정보의 제공, 편집·표제·캡션으로 인한 의미 왜곡·위조 금지 ③정보출처의 적법성 ④성별·장애·민족·종교·사회·출신 국가 등에 의한 차별금지 ⑤수사·형사절차 중인 사건에 대한 판단금지와 무죄추정 원칙 적용 ⑥미성년자 보호 등의 원칙들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를 존중하여 언론보도를 평가하는지 따져보면 우리나라와 독일은 큰 차이를 보인다. 독일에선 이 원칙을 준수하지 않거나 훼손하는 보도들에 대해 다양한 수준에서 제재를 가하는 한편으로 이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기사에 대해선 보호하기 때문이다.

2020년 타츠(TAZ)지는 ‘모든 경찰은 취업 능력이 없다’ 제하의 칼럼을 게재했다. ‘경찰이라는 직업이 사라지고, 시장경제체계는 유지된다면?’이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이 칼럼은 현재 경찰들은 다른 직업엔 부적격이며 그들의 능력을 고려했을 때 쓰레기 매립장 일에나 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경찰 권력을 비판하는 해학적인 내용이었다. 기사가 발행된 후, 독일언론위원회엔 이와 관련하여 380여회의 민원이 접수되었다. 당시 연방 내무부 장관인 제호퍼 또한 언론사를 고발할 것이라 공언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었다. 독일언론위원회는 접수된 민원과 보도규범을 근거로 기사를 검토, 최종적으로 ‘문제없음’으로 평결했다. 경찰의 현실을 시사 풍자함이 보도규범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보도규범은 자율조정기구의 평결뿐만 아니라 법적 판결에 적용되는 가치이기도 하다. 지난 9월,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는 NDR(북부독일방송) 함부르크 스튜디오 담당자의 친인척인사 비위 의혹을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그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기사가 자신들의 가족 평판을 훼손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보도규범에 근거하여 사실 여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무죄추정 원칙에 근거하여 담당자의 이름을 딴 표현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고, 사실처럼 느껴지는 표현에 대해서도 제재했다. 반대로 기사의 내용은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는바 유통을 금지하지 않았다.

보도규범은 자율조정기구와 법정 판결에서도 사용되는 언론의 기본가치다. 1966년, 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에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언론은 민주주의 국가의 필수요소로써 언론엔 여론이 반영되고, 국민과 정치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통제기관’으로 언론의 역할을 정의했다. 그렇기에 독일의 위정자들, 내로라하는 인물들은 자신을 비난한다고 해서 언론사에 찾아가지도 않고, 편파 언론이라고 공격하는 단체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절차를 지켜 언론보도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법적 해결을 위한 절차를 밟을 뿐이다. 이렇게 언론과 언론자유를 보호한다.

끊임없이 언론을 압박하는 당신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언론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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