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애슬레틱이 미디어에 던진 역설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상덕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특파원

이상덕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특파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마켓스트리트 한복판에는 미국의 유서 깊은 레거시 미디어들이 눈여겨보는 신생 미디어 회사인 디애슬레틱미디어컴퍼니가 둥지를 틀고 있다. 2016년에 설립된 지 불과 5년 만에 120만 유료 구독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미디어. 그것도 독자 75%가 연간 구독을 하는 미디어. 창업주인 아담 한스만(Adam Hansmann)과 알렉스 매서(Alex Mather)는 SNS 기반의 피트니스 스타트업인 스트라바 출신으로, 창업 당시 뉴스를 몰랐던 미디어라는 점에서 미국 미디어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디애슬레틱(The Athletic)이 시선을 잡는 이유는 미디어들이 놓쳤던 미디어의 본질을 꿰뚫고 있어서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영역인 스포츠, 광고 없는 깨끗한 사용자 경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뉴스의 깊이라는 삼위일체다.


특히 구단별 전담기자제는 일반 뉴스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자원의 투입이었다. 야구라는 종목 하나만을 잡고 2016년 1월 시카고에 취재기자를 보낸 뒤 토론토, 디트로이트, 뉴욕, 댈러스, 신시내티로 영역을 넓혔다. 또 그사이 종목은 야구를 넘어 복싱, 농구, 하키, 미식축구 등으로 확대됐다. 현재 디애슬레틱이 커버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는 48개, 종목과 리그는 38개, 기자수는 600명이 넘는다. 스타트업답게 철저하게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해가면서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한스만과 매서는 미디어의 본질을 유료 구독이라는 비즈니스 모델로 승화시켰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디애슬레틱이 곧 북미의 스포츠 뉴스 시장을 장악할 것을 예견이라도 했듯이 ‘왜 디애슬레틱이 신문을 약탈하려고 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매서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모든 지역 신문들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 출혈경쟁을 벌일 것이고, 우리는 그들이 사업을 하는 것을 극도로 어렵게 할 것입니다.” 해당 도시에 있는 스포츠구단 소식에 가장 정통한 미디어는 지역 신문이지만 심각한 재정압박에 시달리면서 기자들은 임금 인상도 없는 채 수많은 양의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강요당하고 있고 이러한 경쟁에서 제대로 된 깊이 있는 뉴스 생산이 어렵기 때문에, 디애슬레틱이 이길 것이라는 당돌한 주장이었다.


한스만과 매서는 스타트업에서 구독 모델에 정통했고 깊이 있는 스포츠 콘텐츠라면 열혈 팬들은 광고 없는 대가로 연간 60달러쯤은 지출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1면부터 수십면에 걸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가 차려진 한정식을 독자에게 들이대는 것 보다, 맛있고 깔끔한 디저트만을 따로 선사하는 것이 독자들을 흡입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들은 4년 전 “현존하는 미디어의 스포츠 영역을 파괴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것처럼 출혈을 감수하면서 영토를 넓히고 있다.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디애슬레틱의 매출액은 지난해 4700만달러(559억원)에서 올해 64% 급증한 7700만달러(916억원)에 달할 전망이지만, 모든 현금유입에서 현금유출을 뺀 순현금흐름은 올해 여전히 3500만달러(416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벤처캐피탈들은 유료 구독자수 증가에 열광했고 이들의 도전에 끝없이 자금을 대고 있다. 디애슬레틱은 2023년이면 매출액 1억5600만달러에 순현금흐름이 1500만달러로 흑자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현재 속도라면 무리한 목표도 아니다. 이들은 ESPN,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폭스 스포츠, 야후 스포츠에서 해고된 기자들을 끌어 모았고, 한 구단만을 깊이 파는 심층적인 콘텐츠를 무기로 이제는 팟캐스트를 넘어 합법화된 스포츠 베팅으로 영역을 넓히려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4년 전 기사에서 “디애슬레틱이 맹렬한 확장을 끝내버리면, 더 이상 지역신문의 스포츠면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속보 경쟁에 피로해하는 뉴스룸들이 뉴스의 본질인 독창성 있는 콘텐츠들에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미디어의 역설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