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개인 메일함에 한 통 독자 편지가 왔다. “저출생 대책만 세울 일이 아니네요.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지킬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각도에서 볼 수도 있구나’,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지난 7월23일 ‘관악구 영아 살해’ 용의자 남녀가 체포됐다는 단독 기사를 쓴 뒤 <짧은 숨의 기록>을 구상했다. ‘천륜을 저버린 부모의 행동에도 이유는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구청은 이들과 경제적 어려움 등 이유로 총 29건 상담·사례관리하며 만났다. 학대 정황을 발견한 이는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취재를 하며 처음 알았다. 영아는 학대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타 연령대 대비 적은 수 학대를 당하지만 사망에 이르는 비율이 높다. 이들이 왜 죽는지를 분석한 내용은 찾기 어렵다. 배가고파도, 추워도 아이는 죽지만 아기가 방임당한 건지, 속이나 몸이 나빴을 뿐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통계상 사각이 생기는 이유다.
“기사 한 줄이 세상을 바꾼다”는 힘찬 말을 믿지 않는다. 학대로 아동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언론은 단독 기사, 분석 기사를 쏟아내 왔다. 그래도 학대는 반복됐다. 영아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학대 예방책이나 살아남은 아이를 보살필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
공식 통계 18건, 취재 결과 26건. 누군가는 보잘 것 없는 숫자라 무시할 아이들의 죽음에 관심을 이끌고자 이 기사를 썼다. 살릴 수 있던 아기가 분명 있었다. 내가 믿는 건 “작은 관심이 때로 누군가의 세상을 바꾼다”는 소박한 말이다. 함께 취재해 준 조해람, 오경민 기자에게 고생 많았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