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작하고 꽤 지났는데 상영관에 들어와 단 5분만 보고선 영화 리뷰를 쓰는 사람을 당신은 뭐라고 생각할까. 2006년, 10년차 기자였던 박성원 박사는 그것이 기자의 삶인 줄 알았다. 두 시간짜리 영화가 거의 끝날 때 들어가 이해할 수도, 결말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도 그저 마감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기자로서의 회의감이 커지고 유학을 갈까 말까 갈팡질팡하던 즈음이었다.
어느 날 그는 미래학자 짐 데이터 교수를 우연찮은 기회에 인터뷰하게 됐고, 인터뷰 중 그에게 깊이 매료됐다. “미래학자는 사회에 주요 이슈로 부각되지 않은 문제를 연구한다”는 말을 들으며 박 박사는 미래학자가 된다면 중후반이 아니라 초반부터 상영관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데이터 교수는 미래학(futures studies)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고 했다. 이런 학교를 나왔고 저런 직장 생활을 했으니 앞으로 내 인생은 뻔하겠구나 생각했던 그는 그 말에 “순간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하나의 미래에 집착해 옴짝달싹 못 했던 그가 나머지 미래들을 찾으러, 2007년 데이터 교수가 있는 하와이주립대로 떠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5년 반 만인 2012년 말, 그는 미래학 과정 석·박사 학위를 따고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등에서 미래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가 이 시기 주요하게 진행한 연구는 한국인의 미래인식이었다. 박 박사는 올 것 같은 ‘가능미래’와 왔으면 하고 바라는 ‘선호미래’를 물어본 결과, 한국인에겐 선호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진국이 되겠다’는 목표가 분명했던 과거와 달리 2000년대 들어선 원하는 국가상이 사라져 있었다. 박 박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선호미래를 제시해보자는 생각으로 여러 해에 걸쳐 수십 차례 워크숍을 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계속 성장’ ‘붕괴’ 등 원하는 이미지를 선택하게 했다. 그 결론은 붕괴였다. 박 박사는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경향신문이 2016년 ‘부들부들 청년’이란 이름으로 신년기획을 연재했다”며 “그런데 정말 붕괴를 원할까 궁금해 2016년 또 한 번 연구를 했더니 시민들은 붕괴와 더불어 새로운 시작을 원하더라. 이후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걸 보며 소름이 확 끼쳤고, 실제 저 미래상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2018년 국회에 미래연구원이 설립돼 자리를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혁신성장 △삶의 질 △거버넌스 세 그룹으로 나눠진 미래연구원에서 혁신성장 그룹의 장을 맡고 있다. 다양한 미래 산업 생태계를 예측하고 어떤 인재들과 어떤 미래 산업을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그의 주요한 일이다. 국회의원 임기가 정해져있다 보니 국회는 극도로 현안 위주이지만 이 안에서 미래를 거듭 강조하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숙제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미래인식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해 연구에선 경쟁사회를 벗어나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동체의 등장이 선호미래로 등장했다.
박 박사는 이 미래가 언론과도 연계돼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의 등장으로 개인이 자유롭게 미디어가 된 시대, 전통 신문과 방송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박사는 “기자의 능력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출발을 해보면 다양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꿰뚫고 사건이 향후 이렇게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을 해야 사람들이 기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같다”며 “1000자라는 짧은 글에서 벗어나 풍부한 정보에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가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그는 ‘신문’ ‘기자’라는 호칭부터 붕괴하며 업계와 자신이 어떤 새로운 걸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령 개인 차원에선 회계나 데이터 분석 등을 배워 스스로를 기자가 아닌 디지털 사이언스 기획자 등으로 부르는 미래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미래 예측 능력을 높이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박 박사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스스로 10번만 질문해보면 된다”고 했다. 박 박사는 “30~40개의 미래연구방법론이 있지만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은 ‘다음은 뭐지?’라고 계속 질문하는 것”이라며 “사실 질문은 기자들이 가장 잘 하는 일 아닌가. 저 스스로도 주간지 기자 시절 했던 훈련이 많은 도움이 됐을 정도로 기자는 미래학 하기에 참 좋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혹시 이 기사를 읽고 미래학에 투신하고 싶은 기자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물었다. 그랬더니 “기자를 계속하라”는 반전 대답이 돌아왔다. 박 박사는 “이 사회에서 기자는 정말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며 “그만두지 말고 좋은 기자가 되는 방법을 찾아 달라. 꼭 기자로 안 불려도 좋다. 그런 기자는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