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논설위원 기사 표절, 사측 사과없이 사표만 수리

사측 "편집국과 별개로 작성… 해당 논설위원 먼저 사표 내 조심스럽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 타 언론사 기자의 칼럼을 베껴 쓴 기사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하지만 언론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사안인데도 표절 사건의 진상은커녕 사과도 하지 않은 한국경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의 타 언론사 칼럼 표절 사건은 지난 한 주 언론계의 논란거리였다. 지난 7일 한국경제 A 논설위원의 칼럼성 기사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혐한·反베트남 ‘적개심 팔이’>가 지난달 아시아투데이에 실린 기자 칼럼과 상당 부분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베껴쓰기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기사 첫머리에서 A 논설위원은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균열을 보이자 일부 유튜버 등이 ‘반(反)베트남’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이들은 돈벌이용 ‘손님몰이’를 위해 혐오가 가득한 말과 글로 침소봉대를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다음 문단부터였다. 기사는 크게 △베트남에서 잦아들지 않는 반한 감정 △한국인 승차 거부·출입 금지로 번져 △“신뢰는 쌓기는 어렵지만 허물기는 쉽다” 등의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는데, 여기서 베트남 현지 소식을 다룬 일부 내용과 문장 표현이 지난달 아시아투데이 베트남 하노이 특파원이 쓴 ‘기자의 눈’과 비슷했다.


아시아투데이 하노이 특파원인 B 기자는 지난달 6일자 칼럼 <베트남 바잉미와 순댓국>에서 코로나19 확산 속 불거진 한국과 베트남 네티즌들의 설전, 그 속에 가려진 미담을 전했다. 한국경제 A 논설위원은 이 칼럼을 출처 없이 인용해 자신의 기사에 삽입한 것이다. B 기자의 칼럼을 구성한 총 13개 문장 가운데 8개가 A 논설위원 기사에 포함됐다.


표절 논란이 확산되자 A 논설위원은 기사 출고 이틀 만인 지난 9일 사표를 냈다. 이날 한국경제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취재·보도 경위를 파악해 표절 문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당사자를 인사위에 회부할 방침이었다”면서 “내부 조사 전 A 논설위원이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표를 내 곧바로 수리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은 한국경제 내부에선 당사자 사임과 기사 삭제로 일단락됐지만, 회사 차원의 대응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경제는 자사 이름으로 나간 기사로 표절 피해를 당한 기자와 언론사, 독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사건 경위 설명과 재발방지 대책 등도 내놓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경제 관계자는 “해당 기사는 편집국과 별개로 논설위원이 독자적으로 써왔던 것이다. 또 당사자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며 사표까지 낸 상황이라 회사로서도 조심스럽다”며 “(공식 사과 등) 후속 조치로 진행 중인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반면 중앙일보는 지난해 4월 자사 뉴욕특파원이 미국 언론 사설을 출처 없이 인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이자 자체 조사를 벌여 표절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한 바 있다. 당시 중앙일보는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알림을 내어 “(표절 의혹이) SNS를 통해 제기됐다. 자체 조사 결과 이 같은 지적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깊이 사과드린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원인을 따져보고 내부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해당 특파원에게 소환을 명령하고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한 경제일간지 기자는 “이번 한국경제 표절 논란은 많은 언론사가 주목한 사건이었다”며 “사표를 받았더라도 회사 차원에서 경위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유했다면 내부 취재윤리 확립에 도움됐을 뿐 아니라 언론계 전반에도 경종을 울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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