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평 손수 심은 해바라기… 새 직업은 '푸드 큐레이터'

[기자 그 후] (15) 엄호동 플로피아 대표 (전 헤럴드경제 모바일 편집장)

엄호동 플로피아 대표(전 헤럴드경제 모바일 편집장)가 지난 26일 충북 청주시 미평동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 ‘플로피아’ 앞 해바라기 밭에서 웃고 있다. 부부가 함께 고깃집을 오픈했고 카페를 운영한다. 해바라기 밭은 아이와 함께 일궜다.

지난 26일 충북 청주시 미평동 한 카페.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눈이 아려온다. 빗방울 사이를 뚫고 뿜어져 나오는 쨍한 노랑 빛. 우중충한 하늘 아래, 600평 해바라기 군락이 총천연색을 쏘아댔다. 언덕 위 카페 문을 열고 주인장이 얼굴을 내보인다. 엄호동 전 헤럴드경제 모바일 편집장(사내벤처총괄팀장)은 지난 5월 이 아이들을 손수 심었다. 1만개 구멍을 파고 일일이 해바라기 씨 3개씩을 넣어 물을 줬다. 싹이 자라면 솎아주고 비가 오면 배수로를 팠다.


“장맛비가 3일째예요. 어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 부었다니까요.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주는 걸 보면 짠해 보이죠. 비 오는데 보러 와준 사람들이 고맙고, 더 많이 보여주고 싶으니까 일주일만 먼저 심을 걸 아쉬워하기도 하고, 그러고 살아요.(웃음)”


엄 대표 부부가 지난 3월 인수해 운영 중인 카페 전경. /엄호동씨 제공

20여년 언론 경력 대부분을 디지털 전략수립과 기획부문에서 보낸 그는 지난해 7월 아내, 아들과 함께 서울살이를 접고 청주로 내려갔다. 브런치 카페(플로피아)를 오픈했고 고깃집(조선현방)을 운영한다. 여러모로 현재 삶은 그가 심은 꽃들 같다. 난관과 보람, 결실 모두 오감으로 전해주고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디지털을 오래 하며 허무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종이신문은 실체라도 있는데 디지털은 그렇지 않잖아요. 언론에선 때로 벽보고 외치는 것 같았는데 여기선 진심을 느껴요. 애들한테 나눠준 해바라기 씨가 싹이 나니까 너무 좋아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려요. 고맙다고 해요. 그게 참 즐겁더라고요.”


그런 엄 전 편집장이 음식점을 오픈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물성이 있는 뭔가를 먹어야하는 존재니까. 그렇게 지난해 8월 말 그는 청주 도심에 고깃집을 열었다. 보유한 정육 사업장에서 원재료를 제공하고 식당에서 파는 구조다. 마블링·삼겹살 위주의 ‘병든 육류 소비문화’를 개선하는 ‘푸드 큐레이터’가 되겠다는 의욕이 컸다. 부부가 손님들에게 직접 고기를 구워주고 품종과 부위 설명까지 일일이 다 했다.


손님 상대는 에너지 소비가 컸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올해 3월 부부는 기존 업종과 접목되면서 ‘힐링’이 될 만한 카페를 인수했다. 빌려줄 수 있는, 실제 존재하는 공간을 보유하니 사람을 부를 수 있었고, 부르고 싶었다. ‘음악’을 전공한 아내는 음악전공자나 학생, 동호회 사람들에게 연주공간을 대여해준다.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한 남편은 아이·부모가 참여하는 ‘해바라기 축제’를 기획했다. 부부는 카페 부지 1200평 전체 공간을 교육, 체험, 바비큐 파티, 플리마켓 등 다양한 소통공간으로 만들 구상을 한다.


엄 대표 부부는 낮엔 카페를, 저녁엔 고깃집을 운영 중이다. 카페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음식점 모습./엄호동씨 제공

이제 ‘청주살이’를 시작한 지 1년. 낮엔 카페, 밤엔 식당에서 일하는 사이클이 자리 잡았다. 어느덧 2개 법인, 3개 사업장에서 총 12명 직원과 함께 일한다. 최근 지역 내 상권 근간인 반도체 대기업의 분위기가 위축됐지만 아직은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배달시장 진출을 위한 메뉴를 개발, 테스트를 마치고 8월부턴 배달을 시작한다. 장기적으론 프랜차이즈화까지 꿈꾸고 있다. “지역 언론사에 강의 왔던 게 인연이 돼서 이렇게까지 됐네요. 연고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반도체기업 상권 중 포화되지 않은 도시에 온 거고요. 다 좋은데 와이프랑 저랑 공통적으로 힘든 게 외롭다는 거예요. 같이 생활하던 사람 중 저희만 빠진 거잖아요. 얘깃거리가 달라진 거고. 그래서 누가 한번 오면 안 보내요. 고기랑 술 먹여서 재운 다음 브런치까지 먹여 보내죠.(웃음)”


1969년생인 엄 전 편집장은 항상 사업가 마인드를 지닌 언론사 디지털 전략·기획가였다. 광고회사 창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999년 미주조선일보 입사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잠시 애니메이션 회사에 몸담았던 그는 2004년 경향신문 입사로 언론계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파이낸셜뉴스, 헤럴드경제 등을 거쳐 12~13년 간 디지털 업무를 맡았다. 기성 매체에 도입된 우리나라 1호 로봇기자, 뉴스저작권 사업 원조인 아쿠아프로젝트 등이 대표 프로젝트다. 디지털 기술 관련 보유 특허만 30여개다. 할 수 있는 최대치 해바라기 밭을 일궈보겠다는 버킷리스트를 막 이룬 그는 여전히 “미디어를 좋아하는” 농부다.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로 미디어 강의를 하고 있고, CMS 연관 미디어컨설팅을 하는 미디어디렉션 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엄 대표는 카페 인근 밭을 사서 이 자리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사진은 지난 5월 엄 대표가 아이와 함께 해바라기 싹을 솎아주는 모습. /엄호동씨 제공

항상 남들에게 보일 직함보다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와 이에 대한 스스로의 신념을 좇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청주 이사도 그랬다. 확신은 때로 가족 전체의 짐이 된다. 그때 고민은 오히려 하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 서울을 벗어난다는 건 와이프가 학교 강의를 쉬어야 하고, 아이가 서울 학군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였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지금 자연에서 뛰논다. 고라니, 꿩, 지렁이, 사슴벌레와 친구를 먹었다. 아빠와 함께 해바라기를 심은 날 일기엔 “내가 농부가 되다니!”라고 적는다. 부부는 저녁이 되면 생맥주 디스펜서에서 한 잔 씩을 뽑아들고 카페 앞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걸터앉는다. 해넘이를 보며 “해바라기 자리에 가을엔 메밀을 심고 초겨울엔 유채꽃을 심자”, “배달 프랜차이즈가 잘되면 언론계, 음악계 사람한텐 조건 없이 내주자” 도란도란 얘기한다.


“퇴직은 누구나 겪을 일인데 굉장한 마인트 컨트롤이 필요해보여요. 안부 연락을 해도 예전 같지 않고 ‘언론사 국장하더니 고깃집 하냐’는 경우도 있거든요. 처음엔 저도 아이가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했어요. 지금이야 ‘넌 밥 안 먹고 사니’ 하겠지만요.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과거 같이 생활한 사람들에게 ‘와서 나랑 놀아줘’ 할 수 있는지가 퇴직 후 위축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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