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 변호사에겐 ‘기자 출신’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지난 2004~2008년 국민일보 기자였던 그는 로스쿨 1기로 법조계에 발을 디뎠다. 올해로 변호사 8년차. 기자보다 법조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지만 그는 여전히 언론과 가까이 있다. 법무법인 예율 소속이자 여러 언론사의 자문·고문 변호사로서 언론 관련 소송을 100건 가까이 담당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공보이사를 지냈고 이달부턴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을 맡아 기자들과 마주할 때도 많다. 업무의 절반은 언론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셈이다.
정의사회 구현 같은 큰 꿈을 안고 기자가 됐을 때만 해도 법조인은 생각지도 못한 길이었다. 그러나 한두 해가 지날수록 한계를 느꼈다. 사건팀, 법조팀 등에서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쓰고 또 썼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다. 답답함이 커질 무렵 로스쿨이 눈에 띄었다. ‘변호사는 법을 다루는 사람인데…법이 내가 느낀 한계를 깨는 무기가 되지 않을까.’ 5년 남짓한 기자 생활을 과감히 마무리했다. 이듬해인 2009년 로스쿨에 입학했다.
로스쿨에서 3년간 법 공부에 파묻혀 살았다. 2012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자 ‘법’이라는 커다란 무기가 생긴 걸 실감했다. 그는 무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기자와 변호사로서의 삶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변호사가 됐지만 본질적으로 기자가 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갑’을 대리하는 경우는 없어요. ‘을’ 아니면 ‘병’, ‘정’을 변호합니다. 다른 기자 출신 변호사들, 로스쿨에 진학한 기자들도 비슷한 생각일 겁니다. 다만 변호사는 법을 다루다 보니 기자보다 운신의 폭이 넓다는 장점은 있죠.”
기자 경험은 허 변호사의 또 다른 무기다. 법리에 집착하기보다 사안을 더 넓게,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설득력을 높인다. 기자로 살며 익힌 것이다. “보통 기자를 제너럴리스트라고 부르는데, 다방면을 살펴보고 여러 분야를 많이 아는 것 자체가 스페셜리스트인 것 같아요. 기자의 시각은 법률가와 달라요. 변호사보다 더 잘 아는 법조기자님들도 많고요.”
허 변호사는 다수의 언론 관련 소송을 담당했다. 그 중 ‘정윤회 문건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란 문건을 인용해 정씨가 청와대 인사에 개입했다며 ‘비선실세’ 의혹을 제기했다. 정씨 등은 이를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2017년 8월 검찰은 세계일보 기자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이 ‘정윤회 문건’에 대한 허위성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세계일보측 자문을 맡았던 허 변호사는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2년여간 고생한 기자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기자들이 너무 시달렸어요. 업무를 하면서도 조사 때마다 불려나가고. 압박이 크잖아요. 잠도 못 자고, 취재하는 것도 힘들어했습니다. 다른 사례들도 보면 소송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분이 꽤 있어요. 소송으로 고통받는 기자들이 많습니다.”
최근엔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한 악의적인 소송이 많다고 한다.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도 올라가는 추세다. 허 변호사는 언론사가 소송에 곧바로 대응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언론 관련 소송에선 우리나라가 외국보다 부족한 점들이 있어요. 기자가 기사를 쓸 수 밖에 없었던 ‘상당성’을 더 폭넓게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언론사가 잘못했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하지만, 반대로 상대방이 거짓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기자들은 판결이 나기까지 몇 년간이나 시달릴 겁니다. 소송 때문에 기자가 아프거나 퇴사하는 일은 없어야죠. 기자와 언론사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쪽으로 커리어를 밟아가고 있고요. 언론 관련 소송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