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서 15년간 기자생활, 노조활동 하며 노동법에 관심
척박하고 기댈 곳 없는 세상, 노동자들의 작은 희망 됐으면
서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에서 50여 걸음이면 나오는 마을버스 정류장. 그곳에서 서대문07을 타고 인왕시장과 문화공원을 지나 동성교회 정류장에서 내리면 눈앞에 ‘돌꽃노동법률사무소’가 있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7평 남짓의 사무실. 김유경 대표노무사는 지난 2016년 12월부터 구로를 거쳐 세검정로에서 이 곳, 돌꽃노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14년까지만 해도 기자였다. 막연히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것이 좋아 어릴 적 꿈이 기자였던 그는 2000년 3월부터 2014년 12월31일까지 약 15년간 전자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러나 4년간 머물렀던 노동조합은 그의 인생을 뒤바꿨다. 사무국장으로 1년, 위원장으로 3년간 일하며 노조와 노동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졌던 것이다. 결정적 계기는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였다.
“2012년 노조위원장 이·취임식 때 강진구 기자가 노무사 시험을 볼 때 봤던 시험용 ‘노동소법전’을 선물로 줬어요. ‘여기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법 조항이 담겨 있다. 지부에 선물로 주겠다’면서 주셨죠. 노조위원장으로 일하며 자연스레 법전을 들춰보게 됐는데 언젠가부터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노동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새 노무사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죠.”
2014년 노조위원장으로 일하며 공인노무사 1차 시험에 합격한 그는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신림동 학원에 등록해 2차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끔찍한 시간일 수도 있었던 그 시절. 그러나 김 노무사에겐 꿈같은 나날이었다.
“무턱대고 노동법을 외우는 게 아니라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이해를 하니까 공부가 참 재미있었어요. 게다가 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죠. 가령 2차 시험이 주관식이다보니 주어진 시간 동안 주제를 잡아서 서술을 해야 하는데 기자들 매일 하는 일이 그거잖아요. 학원 등록해서 처음 본 모의고사에서 덕분에 1등을 했죠. 자신감을 갖고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2015년 8월 그는 드디어 2차 시험에 붙어 공인노무사 자격을 획득했다. 이후부턴 노무사로서 그의 인생이 시작됐다. 2016년 금속노조법률원에서 수습 생활을 마친 그는 우연찮은 기회에 빈 사무실을 얻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는 변호사 한 분이 자신이 운영하는 사무실에 방 한 칸이 남으니 누군가 와서 쓰라는 거예요. 무턱대고 찾아가서 제가 쓰겠다고 하고 책상 하나, 노트북 하나 두고 일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개인사업자등록도 하고 전국언론노동조합에 아는 분들이 있다 보니 언론사 노조 자문도 하고 사무실이 썰렁하던 차에 동기 노무사 세 명이 합류하면서 꼴을 갖추게 됐어요. 그러다 12월에 공식적으로 개소식까지 하게 됐죠.”
사무실 이름은 돌꽃노동법률사무소로 지어졌다. 돌꽃은 차갑고 메마른 돌 틈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척박한 세상에서 기댈 곳 없는 노동자들에게 노동 법률 서비스를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실제 이곳에선 사용자 사건은 맡지 않는다. 임금체불 진정, 부당해고 구제 등 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한다. 최근엔 무임금이지만 ‘직장갑질119’ 오픈 채팅방에서 직장인들이 호소하는 온갖 갑질 피해에 자문과 상담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10%인데 저는 대부분 노조 사업장에 있는 분들을 만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노조가 없는 나머지 90%가 있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언론사 노조에 자문을 해주는 것 역시 여러 일 중 하나다. “언론사 노조에 자문을 해주다보면 옛날 제가 노조 활동 했던 때를 많이 돌아보게 돼요.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에서 일을 하는 게 그 땐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했을까 싶고, 또 자신의 출세나 돈을 좇지 않고 전체 조합원들을 대표해 희생하는 노조위원장들이 참 대단해보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참 기쁩니다.”
비록 기자 시절 연봉의 반의반도 못 벌지만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노무사가 되면서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전태일 열사가 골방에서 노동법을 공부하며 ‘이 말을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똑똑한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거든요. 그런 친구, 노무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노동에 관심 있는 기자들이라면 충분히 노무사에 도전해볼 만하다고도 했다. “노무사와 기자는 일의 성격이 매우 유사해요. 누군가 해고를 당해서 상담을 하는 과정은 꼭 인터뷰 같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기 위해 사실관계에 입각해 서면을 쓰는 과정은 기사 쓰는 것 같죠. 바쁜 것도 비슷해요.(웃음) 노동에 관련된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도전해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