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모욕·가족 욕설…악성 댓글에 고통 받는 기자들

기사 잘잘못·논조 비판 아닌
기자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
정신과 치료에 자기검열까지

#종합일간지 A기자는 최근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가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 일부 커뮤니티 등에서 댓글 ‘폭탄’을 맞았다. 기자 개인을 향한 인신공격부터 회사에 대한 욕설까지 무려 1000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A기자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댓글 많이 달렸다는 얘긴 들었는데 몇 번 보다가 안 봤다”며 “나는 괜찮지만 요즘 어린 기자들이 댓글을 보면서 발끈하거나 위축되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많으면 하루 수백 통씩 걸려오는 전화나 메일, 댓글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기자들을 향한 일부 누리꾼들의 인신공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기사 내용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성적 모욕과 가족에 대한 욕설, 협박이 댓글에서 횡행하고 있다. ‘프로필 사진만 봐도 1번 XX 버리는 것도 힘들 듯 하고’ ‘돈벌레 쓰레기 XX들, XXX는 더러운 X 혓바닥에 춤을 추며 XX겠구나’ ‘니 애비와 애미에게 어린년이 씨~이러면 뭐라고 XX을 떨지가 궁금하다’ ‘기레기X에게 당했네. 진짜 잡다가 XX 펜으로 죽기 직전까지 찌르고 싶다’ ‘이 X도 아닌 새끼들 저러다 집 앞에서 XXX에 도끼 하나 선물 받아야’ 등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기사 댓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무분별한 ‘신상털이’ 역시 많다. 종합일간지 B기자는 “내 기사에 댓글 다는 것으로 끝나면 좋은데 어떻게 알았는지 남편 개인 블로그에까지 찾아가 욕을 하더라. 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외에 저의 옛날 굴욕적인 사진까지 찾아내 캡처한 뒤 댓글에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종합일간지 C기자는 “동료 기자의 경우 기사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 기자의 아이 사진까지 찾아서 댓글에 올린 사람도 있었다”며 “당연히 동료 기자는 충격을 받았다. 위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받는 심리적 충격은 크다. 경제지 D기자는 “크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인간인지라 악성댓글을 볼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며 “혹시나 자식들이 댓글을 볼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C기자도 “기사 내용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에 고집을 부리는 식의 댓글이 많아서 성희롱이라든가 가족까지 가리지 않고 욕을 하는 것에 상처받을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사실은 굉장한 스트레스”라고 했다.


악성댓글로 정신적 피해가 커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기자도 있었다. B기자는 “운동하러 갔는데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댓글 쓴 사람처럼 느껴지고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를 보고 낄낄거리는 기분이 들었다”며 “웬만하면 치료는 안 받으려고 했는데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도 되도록 댓글은 안 보려고 하는데 자꾸 보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댓글이 기자를 위축되게 만들어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경제지 E기자는 “댓글을 보고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하루 이틀 만에 털어버렸다”며 “그런데 아무래도 신경이 안 쓰일 순 없었는지 가급적 문재인 정부 비판하는 쪽 기사는 피하게 되더라”고 토로했다. 종합일간지 F기자도 “언론사가 악의적 의도로 기사를 쓴다는 인식이 사회에 쉽게 퍼지고 대중들이 그걸 믿는 분위기가 기자들을 위축되게 만드는 것 같다”며 “아직까지 우리 회사에서 악성 댓글이 무서워서 기사를 못 쓰는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마음은 무거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 한겨레는 일부 누리꾼의 인신공격에 고통 받는 자사 기자들에게 법률 자문을 해주기로 했다. 한겨레 관계자는 “기사 내용에 대한 비판은 새겨들을 수 있고, 새겨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성적인 욕설, 기자 개인에 대한 신상털이, 인신공격 등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법률 지원 차원이 아니라 아예 악성댓글 작성을 독려하는 듯한 정치인이나 교수에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F기자는 “악성 댓글을 다는 분들이 아무 논리도 없이 달지 않는다. 그 논리에 재료를 제공하는 교수 등 전문가들이 있다”며 “납득할만한 비판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좀 더 책임 있는 논평을 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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