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진실 찾기

[스페셜리스트 | IT·뉴미디어]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생각해보면 참 얄궂다. 어쩌면 나라 안팎 상황이 이리도 비슷할까.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포스트-트루스(post-truth)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처음 든 생각이었다. 포스트-트루스는 ‘탈진실’ 정도 의미를 담은 단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연이은 충격적인 사건 여파로 큰 관심을 모았다.


시선을 국내로 돌리면 ‘포스트-트루스’는 한 발 더 들어간다. 물론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건 때문이다. JTBC의 손석희 앵커는 이런 우리 상황을 ‘상실의 시대, 아니 순실의 시대’란 말로 표현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영문도 모를 상처를 입어야 했고, 그 상처가 다시금 긁혀나가 또 다른 생채기가 생겨버린…순실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지금 상황을 탈진실의 시대로 규정하건, ‘순실의 시대’로 규정하건, 당황스럽긴 매한가지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상황이 참 많이 달라졌다. 매 주말마다 질서정연한 시민혁명이 계속되고 있다. ‘포스트-트루스’에서 ‘포스트’를 떼어내려는 시민들의 열기는 광화문 광장을 메운 촛불 개수만큼이나 강렬하다. 언론들 역시 모처럼 ‘포스트-트루스’ 뒤에 숨어 있는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취재 경쟁을 뜨겁게 펼치고 있다.


오래 전 읽었던 <워터게이트-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다시 펼친 건 이런 주변 상황 때문이었다. 잘 아는 것처럼, 이 책은 1972년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를 한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함께 쓴 책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취재록인 셈이다.

 
워터게이트 특종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빛나는 성과다. 최고 권력자의 부정 행위를 파헤쳐서, 결국 하야하게 만든 사건이기 때문이다. 기자를 꿈꾸는 많은 이들의 로망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두 기자가 쓴 <워터게이트>엔 영광의 기록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확인된 게 뭐냐?”는 데스크의 불호령에 쩔쩔매는 장면부터, 사소한 오보 때문에 고민하는 인간적인 모습까지 가감 없이 담겨 있다. 그 뿐 아니다. 두 기자를 진두지휘했던 벤 브래들리는 워터게이트 보도 때문에 한 해 동안 성명서를 두 번이나 발표해야 했다.


그 중 한 번은 닉슨 핵심 참모에 관한 보도가 오보일 지도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기 기자들의 보도가 잘못된 것 없다는 선언을 담은 성명서였다. 그 책에 따르면 브래들리는 나중에 이렇게 털어놨다. “그 때 나는 두 기자와 함께 감옥에 갈 뻔했다. 그 때 난 타자기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제기랄, 우리 새끼들을 믿어보자.”


‘워터게이트’를 읽으면서 저런 인간적인 고백에 더 눈길이 갔다. 대단한 일을 해낸 그들 역시도 걱정하고, 초조해하고, 또 때론 본의 아니게 짊어진 거대한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소시민이란 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포스트-트루스’ 시대를 이겨냈다.


역사 속에서 ‘포스트’가 붙은 시대는 본질이 아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랬듯, 그 시대는 늘 짧았다. 다음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였을 따름이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포스트-트루스 시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론사마다 온도차가 크긴 하지만, 그래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일부 기자들의 땀과 눈물은 ‘포스트 트루스’에서 ‘포스트’를 떼어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랜만에 ‘워터게이트’를 다시 읽으면서 되뇌어 본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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