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권리와 잊히지 않을 각오

[스페셜리스트 | IT·뉴미디어]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최근 강원도가 홈페이지에 도입한 ‘타이머’ 기능이 화제다. 타이머는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의 소멸 시효를 직접 정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강원도의 타이머는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잊힐 권리와 맞물리면서 더 주목을 받았다.


잊힐 권리란 무심코 올린 글이나 사진 때문에 생긴 피해를 막기 위해 논의되는 이슈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글에 대해선 당사자가 삭제 요청할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14년 5월 유럽연합(EU) 최고재판소가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서도 법 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잊힐 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기술 진보 때문이다. 정보 확산 속도와 범위가 월등하게 빨라졌을 뿐 아니라 검색 기술이 개선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예전 같으면 기억 속에 묻혔을 사안들이 쉽게 표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검색의 ‘과잉맥락화’ 역시 무시못할 요인이다. 몇 해 전 아들의 열애 때문에 수 십 년 전 사건이 새롭게 화제가 됐던 모 연예인 사례는 ‘과잉맥락화’로 인한 피해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잊힐 권리는 어떤 형태로든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셜 계정 사후 처리를 비롯해 여러 장치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초보적일 망정 강원도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난 잊힐 권리와 관련해선 조금 다른 관점도 함께 갖고 있다. 제도적 보완 못지 않게 개인적 책임감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잊힐 권리 못지 않게 ‘잊히지 않을 각오’란 새로운 개념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 따져보자. 요즘은 대중을 향해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수월해졌다. 게다가 전파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순식간에 전 세계 사람들을 향해 외칠 수 있게 됐다. 명실상부한 ‘지구촌 시대’가 됐다. 굳이 비유하자면, 손에 고성능 메가폰을 하나씩 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예전 같으면 가까운 사람들과 나눴을 얘기들이 무한 확산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손에 메가폰을 쥔 만큼이나 책임감도 무거워졌다는 얘기다.


내가 ‘잊힐 권리’ 못지 않게 ‘잊히지 않을 각오’도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잊히지 않을 각오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어딘가 글이나 사진을 올릴 때 한번쯤 더 생각을 해보자는 거다. 주어진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좀 더 신중한 책임감을 갖자는 얘기다.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플랫폼이 어느 정도 확산력을 갖고 있는 지 찬찬히 따져보자는 것이다. 


새해엔 ‘잊히지 않을 각오’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나중에라도 지워버리고 싶을 일은 가급적 하지 않겠다는 각오. 그래서 기록된 걸 좀 바꾸거나 지워버리고 싶단 유혹을 아예 받지 않도록 살겠다는 각오를 다졌으면 좋겠다.


기자들은 잊힐 권리와 직접 관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록할 의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기자들 역시 잊히지 않을 각오에 대해 한번쯤 성찰해보면 도움이 된다. 이상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먼 훗날에라도 멋진 기록으로 남을 기사를 쓰겠단 각오를 다지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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